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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11 19:20 수정 : 2016.02.11 20:16

“내가 이 말을 할까 망설였는데….”

1년쯤 전이었을까. 도쿄의 한 동료 특파원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 무렵 박근혜 대통령이 ‘무능하다’고 사정없이 비판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한겨레>는 2014년 9월부터 한국의 ‘네이버’에 해당하는 ‘야후 재팬’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박 대통령을 비판한 내 칼럼이 ‘혐한 누리꾼’들의 먹잇감이 된 모양이었다. 해당 칼럼은 그날 야후 재팬에서 일본인들이 많이 읽은 기사 3위(!)에 올랐고, 기사 밑에는 박 대통령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이 선출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외국인, 특히 혐한 일본인들이 내 칼럼을 재료로 삼아 대통령을 인신공격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외국에 살다 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더니, 지난 2년 남짓 도쿄 생활 동안 박 대통령에 대한 내 감정도 극적으로 요동쳤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역사 문제에 합리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일본 민주당 정권과 마주했던 전임 이명박 정권과 달리 박 대통령의 상대는 ‘역사 수정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아베 정권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12월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2014년 초엔 고노 담화를 검증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고노 담화 등의 계승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성의 있는 선조처를 요구하는 강경 자세를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의 기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고, 세월호와 관련된 자신의 ‘7시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을 기소하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선택을 보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그는 ‘폭군’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지금 뭘 하는지 모르는 ‘혼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지난 4년 반 동안의 대일 외교전에서 왜 패배했을까? 한·일 양국 정부가 10일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안을 발표하는 모습을 비교해 보며,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만든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국 정상이 전날인 9일 전화회담을 했으니 내용은 물론 일정에 대한 사전 조율이 이뤄졌을 것이다.

한국은 이날 남북 경협의 유일한 유산이자, 남북 관계의 유일한 안전판이던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했다. 오후 5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입술 위쪽이 부르터 있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 합의에 이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과 개성공단 폐쇄. ‘한국 외교에 퇴로는 있는 걸까….’ 암담하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로부터 1시간 반 뒤, 이번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카메라 앞에 나섰다. 이날 일본 정부가 여러 대북 제재를 쏟아낸 것 같지만, 사실상 별 효과가 없는 상징적인 조처들뿐이었다. 양국간 수출입 전면 금지 등 많은 조처를 이미 시행 중인데다, 아베 정권의 주요 외교적 과제인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듯 스가 장관은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는 계속해가고자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현재 가동 중인 ‘베이징 채널’을 유지하면서 싸울 땐 싸우더라도 협의하고 대화할 것은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가자는 메시지였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허둥대며 무모한 조처를 쏟아내는 한국과 잘 조율된 일본. 아마추어와 프로의 실력 차이는 이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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