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이중의 위기’가 드리워져 있다. 남북관계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로 날이 서 있다.
이중의 위기는 치명적이다. 정세가 악화돼도 이를 관리할 주체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심 이해당사자들인 남, 북, 미국, 중국이 편을 나눠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으니 위기만 더 타오르고 있다.
2010년, 지금과 비슷한 이중의 위기가 있었다. 우선, 미·중 관계는 최악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은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중국은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두 나라 사이에 세력전이가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결국 미국의 애국주의와 중국의 중화민족주의라는, 자존심을 앞세운 두 나라의 예외주의는 2010년 정면으로 부딪쳤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럿이다. 2010년 1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에 항의해 중국 정부가 미국 기업 제재를 선언했고, 3월엔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증폭됐다. 7월 베트남 하노이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선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미국이 베트남과 필리핀을 공개적으로 편들었다.
남북관계는 2월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 결렬, 3월 천안함 사건과 이후 ‘5·24 조처’, 한·미 연합훈련 등으로 이어지면서 강 대 강 국면이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북 보복에 골몰했다. 북한도 갈수록 예민해졌다.
이런 이중의 위기가 곪아터진 지점이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었다. 당시 서울 광화문 외교부 기자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연평도 포격을 보며 등골이 서늘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자신이 펴낸 책에서 연평도 포격 직후 한국 정부가 대규모 보복 공격을 검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나마 당시만 해도 비상구가 있었다.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안 된다는 미·중 공통의 이해관계, 즉 현상유지 욕구가 위기를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의 긴급 방중을 통해 미국은 한국을, 중국은 북한을 자제시키자는 메커니즘이 작동했다. 미·중 갈등이 끝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지금 상황은 당시보다 더 위험스러워 보인다. 남북한 각각의 내부 의사결정 방식이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돼 있어 유연성과 탄력성이 떨어진다. 남북 사이에 보이지 않는 비공식 의견교환 통로 구실을 했던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았다.
미·중이 취했던 상황관리 방식도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현저히 약화돼 있다. 결정적인 순간을 피하기 위한 미국의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호응할지도 미지수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만 해도 미국 정부에 사실상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의 상황관리에 대한 절박성도 부족해 보인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미·중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국면에서 상황관리는 뒷순위로 물러날 수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최근 북핵 3원칙을 밝히면서 이전에는 없던 ‘국가 안보이익 수호’를 더한 것은 정책 우선순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중국이 사드 배치 계획의 철회까지 요구하는 마당에, 오바마 행정부도 11월8일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 마냥 약한 모습만 보일 수 없다. 민주당 후보를 중국에 비판적인 공화당의 공세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찾아볼 수 없는 ‘2016년 이중의 위기’는 2010년보다 더 위험하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yyi@hani.co.kr[관련영상] ‘박근혜발 북풍’, 대통령의 무지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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