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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25 19:40 수정 : 2016.02.27 00:55

베이징에 오기 전 많은 분들이 ‘미세먼지 가득한 뿌연 하늘’을 염려해주셨다. 하지만 오늘 출근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오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 2주 동안 거의 매일같이 쨍한 하늘에 기분이 좋았다. 주위에 물어보니 매서운 겨울바람이 먼지를 날려보낸 덕이라고 했다. 바람이 불면 춥지만 공기가 맑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춥진 않지만 공기도 맑지 않다. 어느 한쪽을 택하기 힘든, 참 난감한 딜레마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간 군 위안부 문제 합의, 올해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 2월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의 등은 정말 바람처럼 지나갔다. 이 시기가 한반도 정세에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정표가 될 거란 직감은 든다. 하지만 매 사안이 숨가쁘게 진행되는지라, 보고 듣고 쓰기를 반복하는 처지에선 ‘바람이구나, 그것도 강풍이구나’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 베이징의 푸른 하늘이 드러났듯이, ‘동북아 강풍’ 속에선 모호했던 한꺼풀이 걷히고 한국과 중국의 속내가 선명히 노출됐다. 한국엔 누구보다 미국이 가까웠고, 중국은 결정적일 때 북한을 놓지 않았다. 미국 일각에서 제기된다던 한국의 ‘중국 경사론’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기우였고, 중국이 한반도에서 북보다 남을 더 중시한다던 정부의 흥분은 헛된 기대였나 싶다. 머쓱해진 것은 한-중 관계가 역대 최상이라며 방방 뛰었던 박근혜 정부 외교라인이지만, 지금 와서 지난 3년을 돌아보니 어차피 본질은 그대로였던 것 같다.

2014년 8월 아세안지역포럼(ARF) 뒤 정부 고위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북-중의 소원한 관계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가 중-북 외무장관 회담 결과를 홈페이지에 띄웠는데, 다른 나라와 만난 건 상세히 전하면서도 북한은 한 줄로 접촉 사실만 올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러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아했던 것은 당시 한-중 회담과 북-중 회담의 시간 길이가 엇비슷했다는 부분이다. 그리 소홀히 다루려면 북한 외무상은 인사만 하고 치울 일이지, 왜 굳이 시간을 할애했을까. 또 그보다 두 달 전 중국 외교부는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간 회담과 관련해서도 홈페이지에 단 두 문장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양쪽 대표의 기나긴 직함을 빼면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과의 관계도 소원하다는 건가. 이 당국자에게 그런 부분을 묻자, 그는 “다음부터는 글자 수로 평가하는 건 삼가겠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 기념행사에 참가해 천안문 망루에 오른 장면도, 순수하게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내용이 판이해진다. 한국 여론은 정부의 균형외교 노력과 새로운 시도를 칭찬했다. 반면, 최근 사드 배치 논란 이후 중국 여론을 보면, “그때 시진핑 주석과 박 대통령 사이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밖에 없었다. 그렇게 극진히 대접해줬는데 한국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냐”는 반응이 나온다. 당연히 와야 할 행사에 와서 환대를 받았으면 그 값을 하란 얘기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곧 바람이 멎고 맞이할 베이징의 봄이 소문대로 뿌열까봐 걱정이다. 중국 외교는 다시금 알듯 말듯 한 모호함으로, 한국 외교는 다시금 아전인수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푸른 하늘을 보았는데, 황사와 오염물질을 보고 하늘의 본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대기오염이 지긋지긋한 베이징에선 차라리 춥더라도 푸른 하늘을 향유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많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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