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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03 20:22 수정 : 2016.03.03 20:31

이건 무슨 욕을 먹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한번 쓰려고 생각했던 얘기다.

지난달 12일이었을까. 피차 20대 후반에 알게 된 터에 ‘형, 동생’ 하고 지내는 <교도통신>의 스나미 게이스케가 민주당의 아리타 요시후 의원이 강사로 나오는 세미나에 같이 가자고 말을 걸어왔다. 모임의 이름은 ‘동아시아 포럼’이다. 두어달에 한번씩 참석 여부를 묻는 우편이 온다. 모임엔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 언론계 종사자들 그리고 여러 부류의 재일동포들이 참석한다.

강연이 끝나고 아리타 의원을 끌고 2차 모임에 갔다. 하라주쿠에 있는 한 맥줏집에 들어앉았더니 좌석 배치가 하필 저쪽은 일본인, 이쪽은 조선인(!)으로 갈라지게 됐다. 한국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자리에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한국이 아닌 북한에 두고 있는 분들, 좀 더 분명히 말해 총련 활동에 관계하는(혹은 했던) 분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일-조 회담을 하는 분위기네.” “길상, 그런데 이렇게 앉아도 괜찮아요?”

누군가가 농담조로 말을 걸었다. 한국엔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이런 자리에 끼어도 되느냐는 말이었다. 갑자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울분이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반도에선 남과 북이 휴전선으로 갈려 있지만, 반도를 벗어난 일본엔 휴전선이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고, 말하고, 글을 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을 이유가 없고, 누구를 ‘찬양·고무’했다고 붙들려 가지도 않으며, 누굴 만나기 전에 어디에 보고를 하고 허가를 득할 의무도 없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정보에 한정해 말하자면, 일본의 한국 특파원들은 ‘을’의 지위에 머무른다. 일본의 동료 기자들이 북한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홋카이도신문>의 마쓰모토 소이치가 서울로 부임하기 전 북한의 아이패드 비슷한 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일제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참상을 고발하는 집회나 재일동포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집회에 가면 꼭 총련계 활동가들이 있다. 총련에 대해선 동포 사회에서도 복잡한 의견이 존재하고, 냉담한 비판자들도 많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집회 현장에 가보면 이들이 일본 사회와 연대해 수십년 동안 투쟁해온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취재를 하는 한 만나지 않을 재간이 없고, 만나는 한 인간인지라 서로 “수고한다”고 인사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정권이 정권이다 보니 그냥 저절로 만나지고 인사를 하게 되는 이런 작은 행동들에도 덜컥덜컥 겁이 난다. 불과 수십년 전 유력한 야당 지도자를 백주대낮에 납치해 바다에 빠뜨리려 했던 자들이 아닌가.

김지하의 <오적>을 읽고 1976년 한국으로 유학을 간 김정사씨는 현재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전다. 채 한 학기도 못 다니고 재일동포 간첩으로 몰려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점심이나 하자고 만난 도쿄 신바시에서 그는 지팡이를 헛짚어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우린 그에게 도대체 어떤 짓을 한 것일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테러방지법이라는 괴물이 국회를 통과했다는데, 테러를 빙자해 사람을 의심하고, 감시하고, 모든 정보를 탈탈 털어 국민들의 머릿속을 통제하겠다는 국가의 폭주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고 한숨만 늘어간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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