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17 18:09
수정 : 2016.03.17 18:45
몇 해 전 중국에 근무했던 한 외교관 부부는 부임 직후 집을 구하지 못해 한동안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방에서 부부끼리 “이 자리에 책상 등이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라며 맞장구를 친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딱 그 자리에 누군가 새로 가져다놓은 등이 있었다. 부부는 기겁을 하며 도청을 의심했다. 동료 외교관들은 “앞으로 그런 일 많을 거야”라며 도청을 기정사실화했다.
한국 외교관들도 중국 당국의 도청을 의심한다. 민감한 이야기는 전화로 하지 않고, 중요한 자리엔 휴대전화를 두고 간다. 지난해 반체제 성향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발견해 공개한 작업실 콘센트 내 도청장치처럼, 벽이 이야기를 엿들을 정도라면 정말 두려운 일이다.
흉흉한 소문을 듣고 사는 한국 기자들도 다들 주의하지만, 그렇다고 중국 당국을 비난할 처지는 아니다. 국가정보원이나 검경에 의한 도청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은 한국에서도 조심하는 부분이다. 국가를 믿지 못하는 국민들은 ‘텔레그램 이용’으로 대표되는 ‘사이버 망명’에 몰린다. 기자들의 통신자료가 수시로 ‘털린’ 것은 <한겨레> 취재로 일부 확인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타국 외교관이나 외신기자들도 휴대전화 사용을 주의한다. 서방의 비난을 받는 중국보다, 우리는 얼마나 나은가.
중국을 언론 통제 사회로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3월 초 10여일 동안 이어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엔 리커창 총리를 비롯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중국인민은행, 교통부, 외교부 등 주요 부처 수장들이 날마다 기자회견 석상에 나와 직접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했다.
이 기자회견은 연출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중국 정부 기자회견에서 주최 쪽은 질문할 매체를 직접 결정할 뿐 아니라 질문까지도 미리 심사한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가 16일 리커창 총리 기자회견에 대해, “총리는 사전 승인된 질문들을 받았다”며 “질문에 대한 사전 심사를 꺼리는 일부 외국 기자들은 참석을 거부했다”고 전한 배경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당국이 민감해하는 환경오염, 대북 제재, 부동산 시장 폭등, 증시 혼란 등은 아예 질문도 없었다. 양회 전 시진핑 주석의 관영매체 방문이 ‘사전 정지 작업’이란 시각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기시감이 든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몇 차례 없었던, 그나마 기자들의 질문지가 외부에 알려져 사전 연출 논란이 일었던 대통령 기자회견들이다. 박 대통령도 리 총리처럼 기자들에게 ‘재질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집권 세력의 언론 장악 시도는 가능성을 우려하는 수준을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섰다. 과연 우리는 중국보다 얼마나 낫단 말인가.
그나마 집정자의 실패를 국민들이 투표로 심판할 수 있는 정치 제도가 중국보다는 우위라고 위안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세력이 어떤 배경에서든 의아스러운 집권을 하는 사회라면 어떤가? 미국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승승장구하는 트럼프를 보며 “무솔리니도 히틀러도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였다”며 비웃는 중국 여론도 반박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도 ‘선택’이 아니라 ‘검증’과 ‘양성’에 가까운 중국식 지도자 선출 과정을 긍정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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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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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하고 싶어도 해선 안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어느새 그런 일들을 해도 되는 사회가 돼가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체제가 중국보다 꼭 나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뭐가 그리 잘나서 중국 사회와 체제를 비판하는가.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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