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24 19:15
수정 : 2016.03.24 19:37
5년 전인 2010년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일본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이기도 해서 한·일이 협력해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 가자는 담론이 양국 모두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해 3·1절에 뭔가 의미있는 기획을 해보자는 궁리 끝에 한·중·일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비교분석해 보기로 했다. 분석엔 한국의 교과서 운동 시민단체인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소속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담당 기자로서 욕심도 있어 각국 교과서를 실제 눈으로 독파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분석 대상 교과서는 한국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국사>(국정), 일본은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하는 도쿄서적의 <새로운 사회-역사>, 중국은 <의무교육과정 표준실험교과서>(인민교육출판사) 가운데 7·8학년 <중국역사>와 9학년 <세계역사> 등이었다. 일본 교과서는 그동안 공부해온 독학 일본어로, 중국 교과서는 연변 자치주에서 쓰이는 우리말 교과서를 참조했다.
이 분석을 통해 세 나라의 교과서 모두 상대방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도쿄서적 교과서가 여러 아쉬움에도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나름 객관적인 기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중국 교과서는 6·25 등 한반도를 둘러싼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인식이 너무 달라 뭐라 평가하기가 힘들었다. 한국 교과서는 19~20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청일전쟁을 거의 다루지 않았고, 난징학살에 대한 기술도 없었다. 일본 교과서가 일본의 전후보상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는 점에 견줘, 한국 교과서엔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개선이 이뤄졌을 거라 믿지만, 교과서의 수준을 따져볼 때 여전히 ‘일본>한국≒중국’ 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18일 일본의 고등학교 1~2학년용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 뒤 한국에선 다시 한번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퍼졌다. 한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독도 관련 기술이나,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희석시키는 듯한 일본 교과서의 일부 기술에 한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한국 교과서의 기술이 일본 교과서에 견줘 ‘자기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을까. 생각해 볼 대목이 많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해 말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아베 정권도 박 대통령만큼 교과서에 이것만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내용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검정제를 유지하고 있기에 정부가 제시한 집필 기준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출판사들이 나름의 자율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지난해 ‘마나비샤’란 출판사는 중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기술을 부활시켰고, ‘짓쿄출판’은 <일본사A>에서 무려 6군데에 걸쳐 위안부 관련 기술을 넣는 데 성공한다.
“일본은 전시 중 위안부 문제의 규명과 피해회복 조처 등에 대해 (국제 인권기관으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고 있다”(<시미즈서원>),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 대해 아시아 여러 국가로부터 강한 비판이 이뤄졌다”(짓쿄출판), “종군위안부 문제나 난징대학살 등 자국에 불리한 내용을 교과서에 넣지 말라는 의견이 있다. (중략) 유감스런 일이다.”(<도쿄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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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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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정 교과서에 이런 자기 성찰적인 기술이 포함될 수 있을까. 교육부는 일본을 향했던 날선 비판 정신으로 교과서 국정화란 무엇인지 또 검정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게 성찰해야 한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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