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07 20:03
수정 : 2016.04.07 22:08
“안녕하세요. 저는 김혜리라고 합니다. 오늘은 중국 남성과 한국 ‘오빠’의 차이를 살펴보아요.”
최근 포털 ‘왕이’에 올라온 동영상은 빠른 말투로 1인 다역을 진행하는 것이, 요즘 중국 인터넷에서 한창 뜨는 ‘1인 미디어’ 진행자인 파피장(29·본명 장이레이)을 흉내낸 게 분명하다. 다양한 주제의 짧은 동영상으로 명성을 얻은 ‘왕훙’(網紅·인터넷 스타) 파피장의 연출처럼, ‘김혜리’도 3분14초짜리 동영상에서 한국 오빠로 변신했다가, 그의 여자친구로 바뀌더니, 이젠 중국 남자로, 또 그 여자친구로 변신한다. ‘김혜리’도 파피장 같은 왕훙이 되고 수십억대 투자를 받게 될까?
사실 그의 성공 여부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묘사하는 한국 남자의 모습이다. 군복을 입고 나와 “밥 먹을래, 뽀뽀할래”, “밥 먹을래, 같이 잘래” 연거푸 터프하게 묻고, 다정다감한 선배로 등장해 “오늘 날씨 좋다. 점심 먹자”, “너 너무 말랐어. 저녁 먹자”, “자려는데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 야식 먹자”고 유혹한다. 재벌 2세로 변해선 “나, 왕관(경영권) 없대. 널 보호해줄 수 없어”라며 약한 모습도 보인다. 이를 보는 여자친구는 두 눈 가득 ‘하트 뿅뿅’이다.
물론 여러 한국 드라마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 눈엔 한국 남자가 어디 저러나 싶다. 오히려 뒤에 이어지는 중국 남자들 이야기가 훨씬 한국적이다. “내 말을 잘 듣고 있는 걸 보니 날 엄청 좋아하는구나”라는 왕자병, “맨날 김치에 라면 먹다가 중국 오니 참 좋지?”라고 하는 일방적 선입견, “화장은 남자 보여주려고 하는 거 아냐?”라거나 “여자 혼자 외국 가서 뭐해? 밥하는 거나 배워”라는 망언 등은 한국 남자들에게서 많이 봐온 장면들이다. “출산은 여자의 의무”라는 남성우월주의적 발상이나 온라인 게임에 빠져 외출을 않는 ‘덕후 남친’이 중국의 전유물이라 하기는 너무 민망할 뿐이다.
사실 오랫동안 중국에서 한국 남자의 이미지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1990년대 후반 소개되면서 형성된 ‘대남자주의’(남성우월주의의 중국식 표현)적 남자상이 주류였다. 이 드라마가 그렸던 가부장적이고 남녀차별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은 지금도 중국인들 머릿속 깊이 각인돼 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방영된 구사나기 쓰요시,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미니시리즈 <미안해요>는 한국 남자와 일본 남자를 비교해 화제가 됐다. 한국 남자는 정열적이지만, 말수가 적고 진지한 성격에 술 한잔 들어가면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서 여성의 순종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 남자는 다정다감한 성격에 같이 술을 마시며 어리광을 부리는 좋은 친구지만, 툭하면 삐칠 정도로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한다는 묘사였다.
그랬던 한국 남자가 어느덧 낭만적 매력과 세련된 멋의 대명사가 된 걸까? ‘김혜리 동영상’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환상적 한국 남자’를 부각시켜 상대적으로 중국 남자들을 비하한 탓에 포털 등에서 댓글 논쟁이 뜨겁다. “나쁜 남자들을 만난 것뿐”이라는 위로도 있고, “한 한국×의 생각일 뿐”이라는 비하도 있다. 반대로 그의 비판에 수긍하며 중국 남자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눈에 띈다.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는 점잖은 충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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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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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는 자신을 “둥베이 사투리의 한국 유학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 신상은 알려진 바 없다. 한국어 말투에선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아무러면 어떠랴. 그 덕에 현실과 무관하게 ‘의문의 1승’을 거둔 한국 남자로서는, 미소 속에 침묵을 지킬 뿐이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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