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5.05 19:57 수정 : 2016.05.05 21:26

“그건 무슨 노래야?”

나의 3년간 도쿄 생활에 동참하겠다고 결심한 아내가 회사를 휴직하고 일본에 입국한 것은 2013년 12월이었다. 2년 반 정도 만에 아내의 일본어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처음엔 눈에 보이는 간판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고 (귀찮게) 물어대더니, 지금은 상당히 까다로운 한자 이름이나 지명도 너끈하게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런 아내가 언제부턴가 흥얼대던 노래가 있었다. “손나, 지다이모 앗타네토~”(그런, 시대도 있었다고~) 가사가 흥미로워 찾아보니, 나카지마 미유키(64)의 ‘지다이’(시대)라는 노래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노래의 가사가 다시 생각난 것은 지난달 14일 터진 구마모토 지진 현장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노래가 제안하는 것은 아무리 슬픈 일이 닥쳐도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바람에 훌훌 날려버리자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도 슬퍼서/ 눈물마저 모두 말라서/ 더 이상 웃음을 지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는 “‘그런, 시대도 있었다’고 언젠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에서 갑작스러운 반전을 이뤄낸 뒤, “그러니 오늘 일로 끙끙 앓지 말고/ 오늘의 바람에 (모든 것을) 날려 보내요”라고 말한다.

구마모토 재해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실제로 오늘의 슬픔을 바람에 훌훌 날려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외국 기자들이 무너진 집 주변으로 몰려와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고, 가족관계를 묻고, 피해 상황을 묻고, 나중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수첩에 이름을 한자로 써달라고 부탁하는데도 ‘저리 가라’며 싫은 티를 내는 이들이 없었다.

일본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붕괴된 집 앞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지진보험에 들었느냐”였다. 규모 7.3의 지진이 다시 구마모토를 강타한 16일 밤 마시키마치의 집 앞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던 다카모토 다에코(60)는 “소데스네, 도데스카네”(그렇네요, 어떨까요-안 들었다는 의미)라고 말했고, 이튿날 아침 만난 노다 히로아키(56)도 “구마모토는 원래 지진이 없던 곳이에요”(역시 안 들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평생 모아온 재산의 결정체인 집은 무너졌지만, 주택 대출금은 여전할 텐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오히려 기자 쪽으로, 이들에게서 분노와 원통함의 흔적을 찾긴 힘들었다.

이것이 이야기의 끝일까. 그렇진 않다. 한국과는 너무도 다른 이 같은 외견상의 평온함만을 보는 것은 일본의 절반만을 보는 데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3·11 참사 이후 일본 사회는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을 위해 정부·국회·민간 등이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 각각 독립된 보고서를 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말 도쿄전력 전직 고위 임원들의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한 역사적인 기소를 이뤄냈다. ‘가만히 있으라’는 교사의 지시로 학생 74명 등이 쓰나미에 쓸려가 숨진 오카와 초등학교 참사 터도 지난 3월 말 보존이 결정됐다. 물론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일본 사회의 모습에서 세월호 문제를 아직 어쩌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본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미나마타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 한센인 격리시설에 설치된 ‘특별 법정’의 인권 침해를 따져 묻는 수십년간의 투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끈질기게 요구해온 히로시마의 노력까지. 일본인들이 바람에 날려 보낸 것이 있다면 슬픔일 뿐, 기억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