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9 20:11
수정 : 2016.05.19 20:11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시카)는 1992년 설립된 아시아 지역협의체로, 2년마다 정상회의와 외교장관회의가 번갈아 열린다. 2014년 5월 상하이에서 정상회의가 열렸고, 지난달 베이징에서 외교장관회의가 열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3주 전 이 회의 참석차 베이징에 왔다. 외교부는 “우리 외교장관으로서 최초의 시카 외교장관회의 참석”이라고 강조했다. 얄팍한 눈속임이다. 한국이 시카에 가입한 2006년, 그해 6월 열린 정상회의에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참석했다. 물론 이후엔 외교부 차관이 줄곧 ‘대리 참석’을 했지만, ‘외교장관의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강조하기 위해 ‘외교장관의 정상회의 참석’을 숨긴 건 괴이한 일이다. 게다가 외교부가 자랑하는 ‘스타 선배’ 반기문인데, 당시 차관보였던 윤병세 장관의 외교부가 그를 삭제해버린 ‘하극상’은 대체 의도가 뭘까?
시카 당일 기자들을 만난 윤 장관의 다음 설명이 답변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카는 과거 북한과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나라들로 구성됐다. 그동안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이 참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윤 장관은 자신의 시카 참석과 시카의 북한 규탄 선언문 채택에 대해 “북한이 완전히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시카 회원국들이 북한과 친한 탓에 같이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번엔 이들과 더불어 북한을 때리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이런 유치한 맥락에서 ‘반기문 삭제’의 배경을 유추하면, ‘친북’ 모임에 한때 외교장관을 보낸 ‘실수’를 부정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시카는 중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하지만,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몽골 등),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타이·베트남 등), 중동(터키·이라크·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 등)의 굵직굵직한 나라들이 회원국이다. 미국과 일본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한다. 외교 지평을 넓히려면 이만한 계기도 흔치 않을 텐데, 한국 외교의 잣대는 어째 ‘친북’과 ‘반북’의 이분법인가 싶다. 북한은 시카 회원국도 아니다.
물론 북한의 4차 핵실험의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외교의 목표가 단순해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최근 외교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미국·일본은 물론 인도, 영국, 독일, 이란, 몽골, 스리랑카 등등 다양한 나라를 만나 “북핵 문제 관련 협조를 당부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한 고위 외교관은 기고 등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 접속하는 장비별로 주어지는 인터넷 프로토콜 숫자의 경우 한국이 약 1억2000만개, 북한이 100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공공연히 자랑한다. 뭘 의식한 건진 몰라도, ‘사이버 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과 인터넷이라곤 기반도 미미한 북한을 비교하니 좀 민망하다.
이런 경향은 냉전 시기 남북 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국제 무대에서 서로를 비방하는 결의안 등의 채택을 목표로, 남북은 아시아·아프리카의 ‘비동맹국’ 표를 놓고 경쟁했다. 당시 외교부 예산에는 ‘북괴 제압 총력외교’라는 항목이 있어서, 이 돈으로 독재자에게 황금 지팡이를 선물해 환심을 산 적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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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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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당선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오늘 취임한다. 양안관계 발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줄곧 ‘하나의 중국’을 앞세워 외교적으로 대만을 고립시켰다. 이는 대만의 반중국 정서를 확산시킨 측면이 있다. 고립될수록 분리·독립의 욕망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선 곧 분단 고착화를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 외교의 목표는 아니길 바란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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