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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2 18:44 수정 : 2016.06.03 11:15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의 보배였다. 참여정부 시절, 그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 예산과 인력이 총동원됐다. 그가 총장이 됐을 때 국민들은 ‘세계 대통령’을 배출했다며 기뻐했다. 외교관이 되겠다며,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며 ‘반기문 키즈’들이 줄을 이었다.

그가 무능하다는 외신들의 비판이 많다. 안타깝지만, 오는 12월31일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그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더욱 박해질 것이다. 퇴임 뒤 대선 출마 논란까지 점화되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뜨악해질 것이다.

전임 사무총장이었던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도 재임 중에 그리 높은 평가를 받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대중적 친화력과 언론 대응력도 뛰어났고, 유엔의 말단 전문직에서 사무총장까지 올라 유엔 사정에 밝았다. 하지만 ‘친미 사무총장’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재임 기간 상당부분이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펼친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와 겹쳤으니 운이 없는 편이기도 했다. 얼마나 무력감에 시달렸으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바라보며 정신쇠약으로 입원을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반 총장이 미국과의 불협화음을 그다지 겪지 않은 것은, 역대 미국 행정부 가운데 그나마 무력 개입을 최소화하려 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임기의 상당부분을 함께한 행운도 작용했다.

코피 아난은 퇴임 뒤에 더 인정을 받는 인물이 됐다.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이 잦아들었다. 코피 아난도 그의 고국인 가나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사무총장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이듬해 말 대선을 앞둔 가나에서 후보 추대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가나의 국내 정치에 휩쓸리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퇴임 뒤 곧바로 스위스 제네바에 ‘코피 아난 재단’을 세우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재단의 슬로건은 ‘더 공평한, 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다. 그는 2012년 시리아 사태 때 유엔 특사로도 파견됐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뒤를 이어, 국제적인 ‘어른들’의 모임인 ‘디 엘더스’의 회장도 맡고 있다. 솔직히, 좀 멋지다.

코피 아난처럼, 반 총장의 재임시 성적도 퇴임 후의 행보에 따라 보너스가 주어지거나 벌점이 추가될 것이다. 그가 한국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뒤에 방북을 추진한다면, 세계 평화를 증진해야 하는 사무총장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나 대망론을 업고 방북을 한다면, 정치적 논란만 키우며 효과도 반감될 것이다.

또한 반 총장은 유엔의 수장으로서 기후변화·여성·성소수자 문제에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2012년 유엔 연설에서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인권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퇴임 뒤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설파하고, 한국과 세계의 다양성 수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면, ‘실적이 없다’는 비판의 화살은 무뎌질 것이다. 하지만 대선후보로 출마해 총장 시절 발언들을 보수적 지지층의 입맛에 맞게 ‘기름 바른 장어’처럼 물타기한다면, 철학 없이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반 총장 개인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화 수준까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반 총장의 ‘병진적인’ 퇴임 행보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 그가 외교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반기문 키즈’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반기문은 아직도 보배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yyi@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 #20_반기문의 ‘구직 활동’,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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