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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9 20:47 수정 : 2016.06.09 20:47

한국에서 카카오톡을 쓰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중국도 메신저 앱인 웨이신(위챗)이 없으면 세상과의 연결고리 가운데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웨이신 있어요?”라며 한쪽은 스마트폰으로 웨이신 정보무늬(QR코드)를 보여주고 한쪽은 스마트폰으로 그걸 찍는 모습은 중국에선 보편적 풍경이다. 전화번호는 묻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세상의 많은 메신저 앱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서로 좇으며 닮아가지만, 토착한 곳의 문화 탓인지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카톡과 웨이신도 꽤 다르다.

첫째, 웨이신에는 ‘읽음 표시’가 없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가 확인했는지 아는 건 분명 편리한데, 카톡의 읽음 표시 숫자는 때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아. 그녀가 내 메시지를 읽지 않아”라며 좌절하는 청년은 애처롭고, 일부 대학에서처럼 “읽은 놈이 스무명인데 왜 대답은 세명밖에 안 해”라고 후배들을 윽박지르는 선배는 무섭다.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 ‘비행기 모드’를 활용해 읽음 표시를 건드리지 않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요령을 공개하니, “카톡을 늦게 본 척, 안 본 척하기에 좋은 팁”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 있다. 웨이신엔 그만큼의 ‘편리’가 없다.

둘째, 웨이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펑유취안(모멘트)에서는 ‘친구’끼리만 댓글을 볼 수 있어서, 카톡 서비스인 카카오스토리(카스)와 차이가 난다. 카스에선 내가 ‘친구 공개’로 올린 사진에 내 친구들이 댓글을 달면, 나와 친구를 맺은 모든 이들이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내 친구들은 내가 누구와 친구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수든 고의든 ‘모두 공개’로 사진을 올리고 댓글이 달리면, 나와 친구 관계가 아닌 이들도 나의 인간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곧, 사생활이 털리기 십상이다.

펑유취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올린 사진에 ‘친구’들이 댓글을 달아도 자기들끼리 서로 친구가 아니면 댓글을 볼 수 없다. 댓글 쓴 이들 중에 친구가 1명이면 그 한 사람이 올린 댓글만 보인다. 그가 반가워서 내가 또 댓글을 달아도 마찬가지다. 나와 친구가 아니면 내 댓글을 못 본다. 서로 아는 사람끼리만 댓글을 보며 대화하는 제한적 구조여서, 적어도 내 친구 목록이 털릴 위험은 줄어든다. 물론 내가 어떤 이들과 친구인지 자랑하고플 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나를 통한 네트워킹 기회도 줄어든다.

셋째, 웨이신 피시(PC) 버전은 카톡처럼 모바일 버전과 완전히 동기화되지 않는다. 카톡 피시 버전에 접속하면 그 시점까지 모바일에서 나눈 대화 기록이 모두 피시 버전으로 들어온다. 웨이신 피시 버전은 피시 버전상에서 대화한 내용만 보여준다. 모바일에선 모바일 대화와 피시 대화를 모두 볼 수 있다. 전체 대화 내용을 피시에서 못 보니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피시 버전이 회사·학교처럼 ‘바깥일’로 일컬어지는 환경에서 쓰인다는 걸 고려하면, 바깥일과 사생활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되는 셈이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일 미-중 전략·경제대화 개막 연설에서 “중·미가 함께 아태 지역에서 남들을 배척하지 않는 ‘펑유취안’(친구그룹)을 길러내자”고 했다. 정치·외교에 무관심한 계층도 이해하기 쉽도록 쓴 표현일 수도 있고, 우연한 일치일 수도 있지만, 특정 업체의 서비스를 연상시키는 용어를 쓴 게 흥미로웠다. 웨이신에서 느낀 ‘거기까지만 합시다’ 하는 사생활 보호 분위기와 중국이 정치·인권 등에서 강조하는 ‘중국 나름의 모델’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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