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16 17:50
수정 : 2016.06.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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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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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게 없고, 그래서 철도 없었던 20대 초반의 일이다.
난 경기도 의정부에 자리한 미군 부대 ‘캠프 스탠리’의 카투사였다. 보직이 헌병이었기에 주말이면 미군의 제식 권총인 ‘베레타9’에 실탄 10발을 넣고 부대 앞 미군 클럽들을 단속하러 다녔다. 한창때 캠프 스탠리 앞 기지촌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의미에서 ‘뺏벌’이라 불렸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던 1990년대 후반엔 10여개의 미군 클럽들이 모여 근근이 영업을 이어가던 기지촌으로 퇴락해 있었다.
기지촌엔 한국 여성들이 많지는 않았다. 이들이 떠난 뺏벌을 메운 것은 필리핀과 옛소련 출신 여성들이었다. 기지촌 앞 한 클럽에 러시아 여성들이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부대 전체가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헌병 완장을 달고 클럽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따금 저만치에서 봉춤을 추는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서정만씨는 그 기지촌의 흑인 전용이던 락시(Roxy)란 클럽의 한 귀퉁이에 자주 앉아 있었다. 흑인 클럽엔 시끄러운 랩 음악, 백인 클럽엔 유치한 컨트리송이 흘러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이 둘은 절대 섞이는 법이 없었다. 그곳에서 화장을 짙게 한 서씨를 볼 때마다 “저 나이에 여기서 뭐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경멸 어린 눈초리를 건네곤 했다.
시간이 흘렀고, 난 병장이 됐고, 서씨는 2000년 3월11일 부대 앞 허름한 옥탑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40대 후반 정도라 생각했던 서씨의 나이는 68살이었다. 평소 말을 걸어도 대꾸가 없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청각장애인이었다. 주검은 두 눈과 입가가 심하게 멍들어 있었고, 팬티만 입은 채 이가 두 개 부러져 있었다. 미군들에게 유사 성행위를 해주고 몇푼 안 되는 돈을 받아 생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대에 고왔던 할머니의 흑백사진을 보고 그냥 좀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공감하고 있을진 알 수 없지만, 지금 오키나와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이번 분노의 도화선이 된 것은 미 해병대 출신 군무원 케네스 프랭클린 신자토(32)가 올해 갓 스물이 된 오키나와 여성을 성폭행한 뒤 처참하게 살해한 범죄 사건이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밝힌 뒤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오키나와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는 15일에도 온종일 오키나와 사태에 관한 방송을 쏟아냈다. 아침 8시15분에 시작하는 버라이어티쇼인 ‘아사이치’에서 오키나와 문제를 다루더니, 밤 10시에 방송되는 심층뉴스 프로 ‘클로즈업 현대’에도 오키나와가 나온다. 방송을 유심히 보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은 없고, “오키나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뻔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서정만 할머니의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제대 이후 한국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인 미군을 한번도 직접 신문하지 못했고, 미군범죄정보수사대(CID)가 그를 본국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자정이 지나도록 부질없는 고민이 꼬리를 문다. 미-중 대결, 북핵 문제, 미군의 억지력,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미-일 동맹의 강화. 이에 맞서는 중국의 접근저지·영역거부(A2·AD) 전략과 한반도 어딘가엔 설치될 미군의 사드.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황새울을 지키려던 평택 농민들의 눈물의 트랙터와 오키나와 헤노코 해안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절박한 몸부림. 윤금이, 서정만, 그리고 살해된 뒤 여행가방에 담겨 3주째 썩어가던 오키나와 여성 시마부쿠로 리나.
길윤형 도쿄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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