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30 18:16
수정 : 2016.07.01 09:16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백두산 흙을 사게 된 것은 화분과 개똥과 비 때문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정원이 꽤 잘 조성돼 있다. 나무도 적당히 우거지고 물길과 산책로, 잔디밭도 잘 꾸며져 있다. 다만, 개똥이 문제다. 개를 키우는 주민들이 꽤 많은데, 산책하는 개들이 으레 내놓는 배설물을 좀처럼 안 치운다. 그루터기에, 물가에, 길에, 잔디에, 개들이 싸질러놓고 주인들이 안 치운 그 흔적은 늘 걸음을 신중하게 만든다.
이 정도야 조심하면 될 일이지만 문제가 생겼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유치원에서 제 손으로 심은 고무나무 화분을 하나씩 들고 왔는데, 작은 녀석이 빗길에 엎어져버렸다. 아이는 다치지 않았지만, 흙을 절반쯤 쏟았다. 화분에 나무뿌리가 겨우 가려질 정도만 남은 걸 보고 흙을 주워담으려 했다. 그러나 때마침 내리는 빗물은 곳곳의 ‘미수습 배설물’을 낮은 곳으로 실어와 곳곳을 ‘응가 둥둥’ 상태로 만들었다. 음… 그냥 고무나무의 생명력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나무는 흙이 필요했던 걸까. 큰아이의 나무와 작은아이의 나무는 자꾸 키 차이가 벌어졌다. 속상해진 작은아이는 화분에 흙을 채워 달라고 날마다 졸랐다. 결국 없는 게 없다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쇼핑몰 타오바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중국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검색창에 흙 토(土)를 입력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창바이산, 곧 백두산의 흙이 검색결과 상단에 등장했다.
상품 설명을 훑어보니, 백두산 삼림·계곡에서 온 부식토로 흑갈색의 비옥하고 투수성 좋은 흙이라는 둥, 한 움큼 쥐어보면 폭신폭신한 감촉이 느껴지고 손을 펼치면 덩어리지지 않고 사르르 흘러내릴 거라는 둥, 꽃이나 채소를 심기에 좋고 모기르기에 으뜸이라는 둥, 흙 장사꾼의 감언이설이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백두산 흙이라는 데 끌렸다. 9.8위안(약 1700원)을 주고 2.5㎏을 주문했다.
며칠 뒤 잘 포장된 흙이 도착했다. 고무나무 두 그루를 큰 화분에 옮겨심으며 흙을 갈았다. 두 나무는, 비록 여전히 키 차이가 나지만, 너무너무 잘 자라고 있다. 무성하게 새순이 돋는 나무의 성장에 백두산 흙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작은아이 얼굴에 번지는 미소에 대해서만큼은 백두산 흙의 몫이 꽤 크다.
백두산 흙을 샀다고 하니 주위에선 봉이 김선달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흙 장사’는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도 꽃가게는 물론 온라인쇼핑몰에서도 분갈이 용도의 흙을 판다. 그런 흙에 견줘 백두산 흙은 경쟁력을 갖춘 것도 사실이다.
첫째, 중국에서 둥베이(동북) 지방은 쑹허강 유역 등 유기질 높은 흑토지대 덕분에 비옥하다는 인식이 있다. 백두산은 둥베이의 명산이다. (어쩐지 시커먼 흙이었다.)
둘째, 화분이나 모기르기 등을 위해서는 부피에 견줘 물기를 많이 머금을 수 있는 ‘가벼운 흙’이 단단한 흙보다 좋다고들 한다. 화산인 백두산은 돌(부석)도 물에 뜰 정도니, 흙이 가볍기로는 견줄 데가 없다. (어쩐지 생각보다 가벼웠다.)
셋째,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흙이 좋은데, 청정 원시림으로 유명한 백두산이라면 얘기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백두산의 일부를 파는 것도 처음이 아니다. 한 국내 업체는 백두산 물을 길어다 한국과 중국에 내다팔며 돈을 번다. 백두산 관광 자체가 상품이 된 지도 오래고, 관광지에선 ‘물에 뜨는 돌’이라며 부석 조각을 판다.
다만, 무엄하게도 ‘민족의 영산’에서 흙을 퍼다 팔고 있는 이에게 동조했으니 찝찝하긴 하다. 설마 흙 좀 퍼다 판다고 백두산이 닳아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나라 만세.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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