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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7 18:12 수정 : 2016.07.07 21:45

길윤형
도쿄특파원

“길상, 이런 게 나왔더군요.”

얼마 전, 10일 치러지는 일본 참의원 선거 전망을 묻기 위해 도쿄 스이도바시에 있는 다카다 겐 ‘허용하지마 헌법개악 시민연락회’ 사무국장의 사무실을 들렀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다카다 사무국장이 갑자기 <빅 코믹 스피리츠>라는 일본 만화잡지 최신호를 꺼내 들었다. 표지엔 일본의 인기 여배우 하루의 사진이 걸려 있고, ‘아니 왜 이런 만화책을’이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너무 깜짝 놀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상황이 됐다. 만화책의 별책 부록으로 우리가 일본의 평화헌법이라 부르는 ‘일본국 헌법’의 전문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헌법 따위엔 관심도 없는 젊은 세대를 위한 간절한 호소인 듯 “일본국 헌법은 전문과 103조의 조문으로 구성되는, 다른 나라 헌법에 견주면 짧은 법률 문서입니다. 추상적인 말도 많고 뭘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것들도…. (중략) 그러나 짧게 정리된 단어들엔 뭐랄까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도 같습니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의석을 차지할지 모른다. 평범한 만화잡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라도 기여하고 싶다.’ 잡지 편집자의 말없는 호소가 묵직하게 전달돼왔다. 일본의 주요 언론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보잘것없는 주간 만화잡지가 감당하고 있는 꼴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지 않지만 현재 일본은 전후 71년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지나고 있다. 지난 전쟁에서 아시아 주변 국가들을 식민지배하고 침략했던 일본은 패전 이후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나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현재 일본의 헌법이다. 옛 일본 헌법인 대일본제국 헌법(1889년 제정)과 새 헌법인 ‘일본국헌법’(1946년 제정)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1조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옛 헌법이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되어 있지만, 현행 헌법은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반한다”고 적고 있다.

일본이 헌법을 바꾸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자민당은 이미 2012년 4월 자신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헌법 개정안 초안을 내놓은 바 있다. 천황의 지위는 ‘일본의 상징’에서 ‘원수(元首)’(1조)로 바뀌고 일본의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정한 9조의 평화 조항은 사실상 형해화된다. 그 대신 자위대는 정식 군대인 ‘국방군’으로 변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 등을 수행한다. 이는 자위대가 앞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명분으로 광범위하게 국제분쟁에 개입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지난해 9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한 안보법제 제·개정으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한정적으로 행사하게 됐다면, 개헌은 이를 무한정 확장하는 결과를 낳을 전망이다. 이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온다.

일본인들이 자신의 눈앞에 닥친 이 같은 현실을 얼마나 직시하고 있을까. 요즘 일본에선 ‘마사카’(설마) 놀이가 한창이다. 설마 했더니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설마 했더니 ‘브렉시트’가 현실화됐다. 설마설마했던 아베 총리의 개헌까지?

모두가 경제와 살림살이, 아베노믹스에 환장해 있는 사이 거대한 악몽이 눈앞에 바싹 다가서 있다. 10일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주권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그런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은 듯하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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