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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14 18:22 수정 : 2016.07.14 22:17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가 발표됐다. 사드 배치 자체는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던 만큼, 예상된 수순이었다. 다만, 시점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9~10월 발표보다 빨랐다.

두세 달 차이가 뭔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책은 ‘타이밍’이다. 효과는 극대화하고 위험은 최소화하는 시점을 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사드 배치 발표의 ‘타이밍’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미국의 속내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 발표는 8일이었고,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은 12일이었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는 일정들이었다. 일반적인 정책 결정 판단 기준에 비춰보면, 미국은 미-중 관계 악화라는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사드 배치 발표를 미뤄야 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과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 몇명에게 탐문해봤지만, 딱 부러지는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분명한 것은,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도 발표가 임박해서야 이 사실을 들었다는 점이다. 실무자들을 건너뛰고 ‘고공 플레이’로 결정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이들의 분석에 개인적인 추정을 덧붙이면, 한국 대통령선거 일정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한국 국방부는 내년 말까지 사드 실전 배치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쐐기를 박아,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철회하거나 번복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말로 들린다. 내년 말을 ‘목표 시한’으로 삼은 뒤 기술적으로 역산해, 최소한 올해 여름에 사드 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남중국해 판결은 사드 배치 발표를 위한 ‘기회의 창’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중국이 일차적으로 ‘핵심이익’인 남중국해 판결 대응에 전력을 쏟을 수밖에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사드 배치에 대한 저항은 약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중국의 남중국해 대응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사드 배치를 발표했을 수도 있다.

사드 발표가 계속 미뤄질 경우 중국에 ‘유약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미국 내부 강경파들의 주장도 조기 발표에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예상과 달리, 북한의 지난달 무수단 시험발사는 조기 발표에 결정적 요소는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 행정부가 정교한 외교적 손익을 따져본 뒤 정책 결정을 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외정책 참모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의 인맥이 뒤섞여 있다.

자세한 내막은 훗날 ‘블랙박스’가 공개돼야 알 수 있겠지만, 임기 말 구심점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각 인맥들과 부처 간의 복잡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 사드 배치 및 조기 발표로 이어졌을 수 있다. 특히, 차기 권력으로 예상되는 클린턴 진영 입장에선 사드 배치 결정이 넘어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이 처한 대외 환경을 보면, 사드의 한국 배치가 미국에 꼭 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이른바 전략가들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거대한 체스판>에서 “한반도 남쪽은 미국의 힘이 내려앉을 수 있는 횃대”로 규정한 것처럼, 사드 배치를 대중 방파제 구축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은 탈냉전 이후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일선 미군들은 동유럽 쪽에 파견되느니 차라리 이라크 쪽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미국과 러시아 간에 ‘5년 안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미군 내부에서 돌고 있단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도 척을 지며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적·외교적 자산을 갉아먹을 것이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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