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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28 18:31 수정 : 2016.07.29 19:10

길윤형
도쿄 특파원

‘뭐야, 저게 끝이야?’

지난 8일 한·미 양국이 한반도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를 들여놓겠다고 발표한 직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기다려봤다. 일본 언론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한국 외교는 현재 ‘이타바사미’ 상태에 몰려 있다. 일본어로 ‘이타’(板)란 널빤지, ‘하사미’(?み)란 중간에 끼이다라는 의미다. 널빤지 두 장 사이에 끼여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 여기서 두 장의 널빤지란 다름 아닌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개의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다.

이날 총리관저 기자회견에 나선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은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이 건에 관해 미·한 협력이 진전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일본도 이 결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질문에는 “미·한에 의해 배치가 결정되는 것이니 제3국에 대해 우리가 코멘트할 것은 없다”는 멘트에 그쳤다.

‘코멘트할 것이 없다’ 또는 ‘코멘트를 피하려 한다’는 표현은 특정 사안과 거리를 두려 할 때 일본 정부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국과 별 관련이 없는 사안에도 자국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땐 “코멘트를 피하려 하지만, 일반론으로 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입장을 밝힌다. 듣는 사람에 따라 평가는 갈리겠지만, 하기우다 관방 부장관의 반응에서 “중국의 반발은 한국이 알아서 대처할 일”이라는 냉랭함이 전해져 왔다.

지난 4년간 이어진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은 중국에 대한 양국의 노선 대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일본 정부는 미-일 동맹 강화라는 길을 택했다. 일본은 2015년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그로 인해 미-일 동맹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됐다.

이에 견줘 한국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거듭하는 북한을 제어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때마침 위안부 문제 등 역사 현안이 불거지며 한때 한·중이 손을 잡고 일본을 견제하는 모양새가 형성됐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일본은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며 “그래서 한국은 누구의 편이냐”고 집요히 따져 물었다. 이른바 ‘대중경사론’이다. 미-중 사이에서 나름 ‘균형 외교’를 펼쳐보려는 한국을 향해 ‘그래서 잘되나 보자’는 일본 정부와 언론의 훈계를 일일이 옮겨 적지 못한다.

해방 이후 70여년간 이어진 복잡다단한 한·일 외교사 가운데 가장 황당한 에피소드는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가 쓴 <비록, 일한 1조엔 자금>이라는 책에 담겨 있다. 12·12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1981년 4월 일본을 향해 느닷없이 “한국은 자유진영의 주축으로 국가 예산의 35%를 국방 예산으로 쓰고 있다. 그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라며 100억달러의 자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첫 반응은 “한국 정부가 미쳤다”(기우치 아키타네 당시 아시아국장)였지만, 공식과 비선 라인을 넘나드는 1년 반에 걸친 기묘한 협상 끝에 결국 4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게 된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돼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주한미군의 자산인 사드를 통해 얻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미-일 간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사드 도입으로 인해 ‘널빤지 사이에 끼인’ 한국은 국가의 존망을 건 선택에 몰려 있는데, ‘이쪽으로 오라’며 집요하게 훈수를 두던 일본은 딴청을 부린다. 국제관계가 원래 그렇다는 것은 안다. 기가 막혀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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