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8.11 18:09 수정 : 2016.08.11 20:01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허생은 왕징에 살았다. 베이징 변두리 낡은 아파트에서 허생은 중국어 공부만 하고, 그의 처가 바느질품을 팔아 집세를 내고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 울었다. “당신은 평생 에이치에스케이(HSK)를 보지 않으니, 중국어는 공부해 무엇합니까?”

허생은 책을 덮으며 “아깝다. 중국어 공부로 10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7년인걸”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허생은 바로 천안문에 가서 물었다. “누가 베이징에서 제일 부자요?”

왕씨를 말해주는 이가 있어, 허생은 왕씨를 찾아갔다. “내가 뭘 좀 해보려 하니, 100만위안을 꿔주시오.”

기개에 감탄한 왕씨가 “그러시오” 하고 100만위안을 건네자, 허생은 집에 들르지도 않고 산둥으로 가서, 배추·마늘·고추를 모조리 2배 값으로 사들였다. 얼마 안 가서 산둥의 김치공장들이 김치를 못 만들자, 한국에 중국산 김치가 동이 났다. 상인들은 도리어 10배의 값을 주고 되사갔다.

그는 다시 선전으로 가서 갓 창업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사들이며 말했다. “몇해 뒤 중국이 아이티 중심이 될 것이다.” 과연 얼마 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대국이 됐다.

허생은 서울에 가서 홍대의 한량들을 만났다. “노래하고 춤추며 돈을 벌지 않겠소?” 한량들은 모두 대경해서 허생 앞에 줄이어 절했다. “오직 사장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삼삼오오 짝을 맞춘 남녀 한량들이 중국 방송에 나왔고, 한류가 되었다.

허생은 그제야 왕씨를 찾아가 1천만위안을 내놓았다. 왕씨는 절하고 사양하며, 이자는 10%만 받겠다 했다. 허생은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가버렸다.

왕씨는 본디 청와대장과 친했다. 병신년 사드미란 때, 청와대장은 왕씨에게 중국통이 있는지를 물었다. 왕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자 대장은 반색했다. 찾아온 대장을 본 허생이 물었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신임받는 신하로구나. 내가 와룡선생 같은 이를 천거할 테니, 네가 대통령께 아뢰어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느냐?”

대장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어렵습니다. 제2의 계책을 듣고자 합니다.”

허생은 외면하다가,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무릇 외교란 적이 없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포용정책을 펼쳐, 비밀리에 비핵화·통일 합의를 할 수 있겠느냐?”

대장은 또 “어렵습니다” 했다.

“어찌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해보겠느냐?”

“말씀을 청합니다.”

“중국이 한국을 제재할 것은 뻔하니, 남의 것인 사드로 원망을 사기보다는 늦게라도 큰 뜻을 세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중국의 인권 상황을 대놓고 비판하고, 달라이 라마와 차이잉원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로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중국의 1당독재와 패권주의를 조진다면, 잘되면 동북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미국의 제1동맹이 될 것이고, 못되어도 탈아입미의 길은 생길 것이다.”

대장은 힘없이 말했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만이 실리인데, 그게 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그걸 아는 놈들이 이 지경을 만들었단 말이냐! 너희가 대차게 개성공단을 닫을 적엔 실리를 보았더냐! 미국 무기라면 돌도끼도 돈 주고 사올 놈들이 무슨 실리란 말이냐! 북한 인권은 노래를 하면서 중국 인권엔 눈을 감다니, 명분은 또 어디 있느냐! 너 같은 자가 대장이라니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으려 했다. 대장은 놀라서 급히 뛰쳐나가 도망쳤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oscar@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