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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1 18:49 수정 : 2016.09.01 20:19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우선 헤어. 머리에 생선 두 마리를 얹는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10초 타이머를 설정해 창틀에 올려놓은 뒤 ‘셀카’를 찍는다. 길가의 풀, 꽃, 나뭇가지를 냄비에 담아 뒤집어쓴다. 노끈이나 철사를 엮기도 한다. 또 사진을 찍는다.

다음은 의상. 버려진 헌 옷이나 쌀 포대, 농가용 커다란 비닐을 잘라서 두르거나, 갈기갈기 찢은 골판지 상자 조각을 끈으로 묶어 걸친다. 빨대를 엮어 목에 두른다. 곳곳에 고추, 파, 옥수수 같은 농작물을 꽂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는다.

끝으로 슈즈. 버려진 신을 재활용하거나, 다양한 소재의 깔판에 구멍을 뚫어 색색 끈으로 발목까지 묶는다. 마무리 사진을 찍는다.

2013년 3월 이래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서 ‘선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온 왕서우잉(26)은 이런 사진들을 공개했고, 순식간에 팬(팔로어) 수가 늘면서 ‘왕훙’(인터넷 스타)이 됐다.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를 불렀다. 왕서우잉은 “저는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발언으로, 졸지에 ‘비호감 캐릭터’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대놓고 “못생겼다”고 야유했다. 친구 없이 자라며 형성된 독특한 성격과 말습관도 한몫했다. 칠삭둥이로 태어나 병치레가 잦았던 왕서우잉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전염병을 의심했고, 아이들이 그와 함께 놀지 못하게 했다. 13살에 다니던 학교마저 중퇴했다.

대중에게 잊혀가던 2014년 여름 어느 날, 왕서우잉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산둥성 시골에서 ‘꿈의 패션쇼’라는 제목의 행사를 열었다. 모델과 시설에 본인도 불만일 정도로 그저 그런 패션쇼였지만, 흙밭 런웨이에서 열린 벽촌의 남루한 쇼에 관심을 보인 매체도 더러 있었다. 특히, 당시 미국 뉴욕대에서 졸업작을 준비 중이던 궈룽페이 감독이 이를 소재로 만든 짧은 동영상은 공유 사이트 유쿠에서 선풍적 관심을 받았다.

왕서우잉은 다시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됐고, 악조건을 무릅쓴 ‘주이멍’(꿈을 좇는) 이미지로 이름을 얻었다. 그의 패션도 큰 칭찬을 받았다. 심사를 보던 톱스타 판빙빙이 “내가 당신의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가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해 보였다. 상하이의 한 고급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전시하며 디자이너를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전시회’를 열었다. 관람객들은 ‘반실용주의’, ‘반쾌락주의’ 등 정작 작가는 알아듣지 못할 용어로 호평을 쏟아냈다. 디자이너 공개 뒤 사회자가 존경하는 인물을 묻자, 왕서우잉은 “샤샤 코넬”이라고 했다. 사회자가 ‘코코 샤넬’이라고 고쳐주자, 그는 “맞아요, 맞아요. 그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왕서우잉을 소재로 궈룽페이 감독이 만든 다큐 영화 <선녀 이야기>가 8월5일 베이징의 칭화대 시사회 등 여러 행사를 통해 중국에 소개됐다. 왕서우잉은 영화에서 “패션은 부자들만 누리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패션은 왜 없느냐”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궈 감독은 왕서우잉이 딱히 답을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식 교육을 받아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유학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국내 학교들은 홍보 효과를 위해 그를 이용하려고만 했다. 방송사들도 결국은 그때 잠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팬이 23만8천명을 넘어선 그의 웨이보에는 올해 들어 새로운 ‘작품’이 거의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이젠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도 드물다. 판빙빙은 그의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가지 않았다. 현재 왕서우잉은 고향의 한 식당에서 일하면서, 때때로 결혼 이벤트 회사의 사진 촬영을 돕거나 이따금 출연료를 받고 각종 행사에 나간다고 한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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