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08 18:22
수정 : 2016.09.10 11:29
길윤형
도쿄특파원
일본에 부임한 게 2013년 9월이니 도쿄 생활도 벌써 만 3년이 되어간다. 처음 도쿄 생활을 시작한 뒤 주말이 되면 주변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한참 동안 산책을 다녔다. 집 밖을 나가 5분 정도를 걸으면 도쿄의 한강이라 부를 수 있는 스미다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 좀 더 나아가면 일본 스모의 요람인 ‘료고쿠 국기관’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북쪽엔 유명 관광지인 아사쿠사, 서쪽으로 가면 ‘오타쿠들의 천국’ 아키하바라가 나온다. 2013년 12월엔 주오구 구립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하고선 나도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된 듯해 뿌듯했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방향 감각이 생긴 뒤엔 지하철 노선이나 지명에 민감해지게 됐다. 이제는 집에서 요요기공원이나 교외의 지유가오카에 가려면 어떤 지하철을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항의 위치다. ‘도쿄의 관문’이라 부를 수 있는 나리타 공항에 가려면, 집 앞 히가시니혼바시역에서 나리타공항행 열차를 타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나리타 공항과 도심을 잇는 게이세이선에 ‘야히로’란 별 볼 일 없는 작은 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난 1일은 일본에서 간토(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93년이 되는 날이었다. 1923년 9월1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일본 간토 일대에서 10만명이 넘는 이들이 희생됐다. 일본인들은 9월1일을 ‘방재의 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간토 지역의 자이니치들에게 이날은 조선인학살 추모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1일부터 주말인 4일까지 간토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추모·위령제가 열렸다.
지난 3일 야히로역과 살을 맞대고 있는 도쿄 아라카와강 둔치에서 호센카(봉선화)라는 일본 시민 그룹이 주도하는 35번째 한국·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진행됐다. 이 추도식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기누타 유키에(2008년 사망)라는 한 일본 초등학교 교사 덕분이다. 도쿄 아다치구의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아이들과 함께 도쿄 아라카와 방수로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지역 촌로들로부터 예전 간토대지진 때 강 둔치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됐다는 얘길 듣게 된다. 아사오카 시게조란 노인은 구체적으로 “요쓰기바시 아래 부근에서 군대가 조선인을 10명씩 묶어 세우고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 얘길 들은 기누타 등은 1982년 호센카라는 단체를 만들어 노인들이 증언한 학살 현장에서 유골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유골 발굴엔 실패했지만, 모임은 매년 둔치에서 추도식을 열고 있다. 2009년 9월 학살 현장 부근에 작은 토지를 구입해 추도할 도(悼) 자를 새긴 추모비도 세웠다. 올해 추도식엔 자이니치 가수 박보씨와 일본인 농악단이 참석했다. 일본인들이 6천명이 넘는 조선인들을 학살해댄 이유와 관련해선 의병전쟁이나 3·1운동 때 이뤄졌던 학살의 경험과 연관성을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생각해 보니 조선인 학살과 관련된 도쿄의 옛 지명은 모두 집과 가까운 곳들이었다. 경찰서 내에서 임신한 제주 출신 조선 여성이 일본도에 찔려 죽었다는 가메이도, 4만명이 넘는 이들이 화염 돌풍에 말려들어 죽었다는 요코아미초 공원, 수십~수백명의 사람들이 기관총으로 살해당한 요쓰기바시, 그리고 그 외곽의 후나바시, 나라시노. 복잡다단한 피와 학살의 역사를 배우게 되니, 평소 지나던 지명과 골목들은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니게 됐고, 괜히 생각만 복잡해진다.
한·일 정부가 말하는 ‘미래지향’이란 결국 뭘까. 이는 결국 피해자들의 ‘망각’을 전제로 한 것으로 제정신을 가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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