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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9 18:19 수정 : 2016.09.29 20:51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28일 지근거리에서 본 왕이(63) 중국 외교부장(장관)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청사에서 쓰촨성 정부와 공동주최로 중국 주재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쓰촨성 소개 행사를 주최했다. 올해 들어 닝샤·광시·산시에 이어 네번째다. 연회장에선 왕이 부장을 에워싼 각국 외교관들이 정신없이 손을 붙들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리커창 총리의 미국·캐나다·쿠바 등 11일짜리 순방을 수행하고 막 돌아와 곧장 행사장에 도착한 터였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인민 대표 대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 베이징/AFP 연합뉴스
왕이는 이 행사의 주인으로서 피곤을 무릅쓰고 많은 손님을 맞이했지만, 사실 그는 중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그의 팬 계정이 있고, 외교부 내에도 그의 팬클럽이 있다고 한다. 웬만해선 정치인의 이름이 올라오지 않는 포털 ‘인기검색어’ 상위권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체 왕이는 왜 인기가 좋을까?

첫째, 잘생겼다. 중국 인터넷에서 왕이에게 주로 따라붙는 별명은 ‘남신’이다. 아름다운 여성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 ‘여신’에 빗댄 표현이다. 살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지, 스스로도 잘 아는 것 같다. 2009년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 시절 그를 만난 쑹추위 친민당 주석이 “화면보다 실물이 더 잘생기셨군요!”라고 하자, 그는 조용히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술을 ‘원샷’했다고 한다.

둘째, 귀엽다. 상당수 중국 기자들은 그를 좋아한다. 2015년 리 총리를 수행해 유럽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과 단체사진을 찍으려던 리 총리가 “왕 부장은 왜 안 오세요?”라고 하자, 미처 예상 못한 듯 얼굴이 빨개져서 뛰어오더라는 일화가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언젠가 기자회견에서 그가 손으로 인용부호(“ ”)를 나타내기 위해 양손을 들어 브이(V)자로 만든 뒤 까딱거린 모습이 유명하다.

셋째, 능력이 출중하다. 문화대혁명 시기 헤이룽장성에서 건설노동을 하며 ‘지식청년’ 시절을 보낸 왕이는 29살에야 대학을 졸업해 늦깎이 외교관이 됐다. 그런데 이듬해인 1983년 일본을 방문하게 된 후야오방 당시 총서기의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한번 맡겨본 것이 빼어나더라는 후문이다. 2년차 ‘막내’가 당 최고지도자의 외교 연설문을 써냈으니 그는 곧장 외교부의 전설이 됐다. 왕이는 처장(과장급), 부사장(부국장), 사장(국장)으로 승진할 때마다 ‘최연소군’에 속했다. 그럼에도 그는 겸손했다. 각종 건의와 지적을 늘 수용했다는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역시 외모만으로는 ‘남신’이 될 수 없다.

넷째, 중국의 외교가 성장했다. 나라가 성장할수록 외교의 역할이 커진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외교·경제·군사적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경우가 늘었다. 더욱이 중국 언론은 국내 정치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반면, 외교 성과는 대대적으로 포장한다. 그러니 왕이 같은 능력있는 외교관이 매력을 발산하고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결국 왕이는 중국 외교 성장과 자신감의 상징이다.

왕이는 외신기자들을 피하지 않는다. 상냥하지만, 당당하다. 지난 6월1일 왕이는 중국 인권 문제를 질문한 캐나다 기자에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중국을 아는가? 중국엔 가봤는가? 일찍이 형편없이 가난했던 중국이 6억명 이상을 빈곤에서 구제한 것을 아는가? 중국이 이미 1인당 8천달러 수준의 소득을 얻는 세계 제2대 경제대국이라는 것을 아는가? 우리가 만약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이렇게 큰 발전을 이룩했겠나? 중국 헌법엔 인권 보호 조항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중국은 환호했고, 캐나다는 항의했다. 우리의 표정은 어땠던가?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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