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이상한 일이 참 많았다. 그게 모두 최순실씨 때문이었다고,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의문과 의혹의 끊어진 연결고리에 최순실씨를 끼워맞추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편리성에 기대기 쉬운 인식 구조의 위험성을 스스로 경계하면서도, 우리가 도깨비 빗자루와 싸웠던 것 아닌가 하는 깊은 자괴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 통일부와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일이 몇번 있었다.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때도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했기에 박근혜 정부 의사결정 과정의 퇴행성은 쉽게 눈에 띄었다. 이전 정부에 비해 가장 황당했던 경험은 북한 쪽의 성명 발표에 대한 통일부나 청와대의 한 박자 혹은 두 박자 느린 대응이었다. 2014년 6월30일 오후 북쪽 국방위원회가 군사적 적대행위와 상호 비방·중상 전면 중지, 한-미 연합군사훈련 계획 취소 등의 내용을 담은 ‘중대 제안’을 발표한다. 이전 정부라면, 정상적인 정부라면 밤늦게라도 당일에 공식 입장을 발표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신문은 북쪽 주장으로 ‘도배질’되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의 선전전에 놀아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공식 입장은 이튿날 오후 늦게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나왔다. 북한 제안을 받는다거나 수정 역제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성이 결여된 제안”이라고 일축한 게 고작이었다. 이 정도 성명을 내려고 하루를 끌었단 말인가, 한탄이 절로 나왔다. 비슷한 일이 최소한 몇번은 더 있었다. 성명을 빨리 내라며 통일부를 재촉하던 기자들도 “청와대에서 연락이 없다”는 반복되는 말에 기다리기를 포기하곤 했다. 좀더 내밀한 사정을 아는 당국자들은 “우리가 성명 초안을 올리면 박 대통령이 빨간펜으로 수정해서 보내온다. 그래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당시 ‘빨간펜’을 쥐었던 사람이 박 대통령일까, 최순실씨일까? 혼란스럽다. 인사나 정책 결정도 신묘함이 있었다. 정부 부처 고위급 인사나 정책안은 해당 청와대 수석실과 청와대 부속비서관실을 거쳐 박 대통령한테 올라간다. 다시 내려오는 일부 인사 및 정책안에는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가 쳐져 있었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실행하라는 뜻이고, ‘가위표’는 실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세모는 뭐냐’고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은 하소연하곤 했다. ‘세모’가 무슨 뜻이냐고 박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장관이든, 수석이든,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박 대통령을 직접 독대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전화통화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수석이나 비서관이나 행정관이나 모두 정호성 부속비서관만 쳐다봐야 했으니, 청와대 기강이 설 턱이 없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빼곤 자리만 채우는 허수아비였다. 그 ‘세모’를 친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을까, 최순실씨였을까? 슬픈 질문이다. 일선 부처에서 올린 안들이 종종 뒤집혀서 내려오다 보니 도대체 배후가 누구냐고, 기자들과 정부 당국자들이 ‘합리적 의심’을 하는 건 당연했다. 추적은 인수위 시절부터 외교안보 사안에 깊숙이 개입을 해온 정호성 비서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미국에 부임하고 나서도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핵심 인사가 누구냐는 질문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한테서 몇차례 받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때 한 약속과 달리 북한 붕괴론에 매달리거나, 지난 2월 개성공단 전격 폐쇄 등 돌출적인 결정들이 이들에게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기가 참 민망하다. yyi@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세모를 친 사람은 누굴까 / 이용인 |
워싱턴 특파원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이상한 일이 참 많았다. 그게 모두 최순실씨 때문이었다고,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의문과 의혹의 끊어진 연결고리에 최순실씨를 끼워맞추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편리성에 기대기 쉬운 인식 구조의 위험성을 스스로 경계하면서도, 우리가 도깨비 빗자루와 싸웠던 것 아닌가 하는 깊은 자괴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 통일부와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일이 몇번 있었다.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때도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했기에 박근혜 정부 의사결정 과정의 퇴행성은 쉽게 눈에 띄었다. 이전 정부에 비해 가장 황당했던 경험은 북한 쪽의 성명 발표에 대한 통일부나 청와대의 한 박자 혹은 두 박자 느린 대응이었다. 2014년 6월30일 오후 북쪽 국방위원회가 군사적 적대행위와 상호 비방·중상 전면 중지, 한-미 연합군사훈련 계획 취소 등의 내용을 담은 ‘중대 제안’을 발표한다. 이전 정부라면, 정상적인 정부라면 밤늦게라도 당일에 공식 입장을 발표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신문은 북쪽 주장으로 ‘도배질’되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의 선전전에 놀아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공식 입장은 이튿날 오후 늦게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나왔다. 북한 제안을 받는다거나 수정 역제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성이 결여된 제안”이라고 일축한 게 고작이었다. 이 정도 성명을 내려고 하루를 끌었단 말인가, 한탄이 절로 나왔다. 비슷한 일이 최소한 몇번은 더 있었다. 성명을 빨리 내라며 통일부를 재촉하던 기자들도 “청와대에서 연락이 없다”는 반복되는 말에 기다리기를 포기하곤 했다. 좀더 내밀한 사정을 아는 당국자들은 “우리가 성명 초안을 올리면 박 대통령이 빨간펜으로 수정해서 보내온다. 그래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당시 ‘빨간펜’을 쥐었던 사람이 박 대통령일까, 최순실씨일까? 혼란스럽다. 인사나 정책 결정도 신묘함이 있었다. 정부 부처 고위급 인사나 정책안은 해당 청와대 수석실과 청와대 부속비서관실을 거쳐 박 대통령한테 올라간다. 다시 내려오는 일부 인사 및 정책안에는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가 쳐져 있었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실행하라는 뜻이고, ‘가위표’는 실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세모는 뭐냐’고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은 하소연하곤 했다. ‘세모’가 무슨 뜻이냐고 박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장관이든, 수석이든,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박 대통령을 직접 독대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전화통화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수석이나 비서관이나 행정관이나 모두 정호성 부속비서관만 쳐다봐야 했으니, 청와대 기강이 설 턱이 없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빼곤 자리만 채우는 허수아비였다. 그 ‘세모’를 친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을까, 최순실씨였을까? 슬픈 질문이다. 일선 부처에서 올린 안들이 종종 뒤집혀서 내려오다 보니 도대체 배후가 누구냐고, 기자들과 정부 당국자들이 ‘합리적 의심’을 하는 건 당연했다. 추적은 인수위 시절부터 외교안보 사안에 깊숙이 개입을 해온 정호성 비서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미국에 부임하고 나서도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핵심 인사가 누구냐는 질문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한테서 몇차례 받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때 한 약속과 달리 북한 붕괴론에 매달리거나, 지난 2월 개성공단 전격 폐쇄 등 돌출적인 결정들이 이들에게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기가 참 민망하다. yyi@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