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내가 지지한 적도 없는 대통령에게 망신살이 뻗쳤는데,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가!” 최순실 사태 이후 나라 꼴에 절망하는 고국 동포들의 심정은 오죽하실까만, 중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도 복장이 터진다. 중국의 다양한 매체들이 이번 사태를 어찌나 속속들이 전하는지 실로 놀랍다. 며칠 전엔 동네 시계방 아저씨가 한국인 손님을 알아보더니, “너네 대통령은 누구 (말을 따르는) 비서냐”, “너희는 왜 그렇게 사드 배치를 고집하며 지역 평화를 위협하느냐”고 시비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한국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렸다. 기분이 상한 작성자는 이 가게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제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부인하긴 했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사교 연루설은 중국에도 널리 소개돼 ‘킬킬거림’을 자아낸다. 최근 상하이에서 열린 시국선언 행사 참석자가 방송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기가 찬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중남미 유학생들이 “고대 마야·잉카제국 때는 우리 선조들도 샤머니즘으로 국정을 펼쳤어요”라고 ‘위로’해줬다는 것이다.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있는 중국인들은 날카롭다. 박근혜 곁에 최태민·정윤회·최순실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는데, 왜 국회의원 5선, 대통령 4년차인 지금에야 저 난리냐고 그들은 묻는다. 정당, 시민단체, 언론의 검증이 왜 부족했는지 궁금해하고, <티브이 조선>은 이미 취재한 내용을 왜 석달 뒤 내놨는지 알고 싶어 한다. “언론의 자유라더니”, “민주화 투쟁이라더니” 하며 희미한 웃음이 그들 입가에 번질 때면 정말이지 쪽팔려서 못 살겠다. 중국의 관심이 마냥 순수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국 매체들은 일찌감치 사태 초기부터 그 배경이 ‘대통령제의 한계’라고 규정했다. 7일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 ‘세계주간’은 이승만 하야, 박정희 피살, 전두환·노태우 구속에다가, 김영삼·김대중의 아들들, 노무현의 죽음, 이명박의 형, 그리고 최순실까지 한꺼번에 묶고는, “한국인들은 왜 좋은 대통령을 뽑지 못할까? 서방식 민주주의가 한국의 토양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연히 그 이면에는, 서방이 중국 체제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데 대한 불편함과 전형적인 반격이 녹아 있다. 마침 민주주의의 본고장 미국 또한, 대통령 선거를 진흙탕으로 만들어놓고 성추문과 위법 논란에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또 하나의 사례를 제공한 참이다. 미국 대선 투·개표가 이뤄지던 날 중국 당국은 방송 및 인터넷에서 “과도한” 선거 중계를 제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어차피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는, 아니 민주주의 자체는 중국의 관심사항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제기된 한국 사회의 비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불통’과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폐단은, 중국 체제에선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었다. ‘정치인 박근혜’의 집권 기반과 친일·독재를 청산 못한 한국 정치의 특징도 설명하면 좋겠지만, 역시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와 최순실 사태를 거치며 그의 중국 내 이미지는 급전직하했지만, 중국인들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우리가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뤘다면 이렇게 쪽팔리진 않았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10일 베이징대 한국 유학생들은 시국선언문을 냈고,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12일엔 베이징 교민들이 집회를 준비 중이다. 이들이 신분이 불안정한 이국땅에서 부끄러움을 극복하려 행동에 나설 때, 그들을 부끄럽게 한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oscar@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쪽팔려서 못 살겠다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내가 지지한 적도 없는 대통령에게 망신살이 뻗쳤는데,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가!” 최순실 사태 이후 나라 꼴에 절망하는 고국 동포들의 심정은 오죽하실까만, 중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도 복장이 터진다. 중국의 다양한 매체들이 이번 사태를 어찌나 속속들이 전하는지 실로 놀랍다. 며칠 전엔 동네 시계방 아저씨가 한국인 손님을 알아보더니, “너네 대통령은 누구 (말을 따르는) 비서냐”, “너희는 왜 그렇게 사드 배치를 고집하며 지역 평화를 위협하느냐”고 시비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한국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렸다. 기분이 상한 작성자는 이 가게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제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부인하긴 했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사교 연루설은 중국에도 널리 소개돼 ‘킬킬거림’을 자아낸다. 최근 상하이에서 열린 시국선언 행사 참석자가 방송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기가 찬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중남미 유학생들이 “고대 마야·잉카제국 때는 우리 선조들도 샤머니즘으로 국정을 펼쳤어요”라고 ‘위로’해줬다는 것이다.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있는 중국인들은 날카롭다. 박근혜 곁에 최태민·정윤회·최순실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는데, 왜 국회의원 5선, 대통령 4년차인 지금에야 저 난리냐고 그들은 묻는다. 정당, 시민단체, 언론의 검증이 왜 부족했는지 궁금해하고, <티브이 조선>은 이미 취재한 내용을 왜 석달 뒤 내놨는지 알고 싶어 한다. “언론의 자유라더니”, “민주화 투쟁이라더니” 하며 희미한 웃음이 그들 입가에 번질 때면 정말이지 쪽팔려서 못 살겠다. 중국의 관심이 마냥 순수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국 매체들은 일찌감치 사태 초기부터 그 배경이 ‘대통령제의 한계’라고 규정했다. 7일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 ‘세계주간’은 이승만 하야, 박정희 피살, 전두환·노태우 구속에다가, 김영삼·김대중의 아들들, 노무현의 죽음, 이명박의 형, 그리고 최순실까지 한꺼번에 묶고는, “한국인들은 왜 좋은 대통령을 뽑지 못할까? 서방식 민주주의가 한국의 토양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연히 그 이면에는, 서방이 중국 체제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데 대한 불편함과 전형적인 반격이 녹아 있다. 마침 민주주의의 본고장 미국 또한, 대통령 선거를 진흙탕으로 만들어놓고 성추문과 위법 논란에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또 하나의 사례를 제공한 참이다. 미국 대선 투·개표가 이뤄지던 날 중국 당국은 방송 및 인터넷에서 “과도한” 선거 중계를 제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어차피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는, 아니 민주주의 자체는 중국의 관심사항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제기된 한국 사회의 비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불통’과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폐단은, 중국 체제에선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었다. ‘정치인 박근혜’의 집권 기반과 친일·독재를 청산 못한 한국 정치의 특징도 설명하면 좋겠지만, 역시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와 최순실 사태를 거치며 그의 중국 내 이미지는 급전직하했지만, 중국인들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우리가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뤘다면 이렇게 쪽팔리진 않았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10일 베이징대 한국 유학생들은 시국선언문을 냈고,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12일엔 베이징 교민들이 집회를 준비 중이다. 이들이 신분이 불안정한 이국땅에서 부끄러움을 극복하려 행동에 나설 때, 그들을 부끄럽게 한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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