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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4 18:15 수정 : 2016.11.24 20:57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 자동차 ‘빅3’ 공장들이 몰려 있는 미시간주를 다녀왔다. 미시간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마지막 방화벽이었던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민주당의 요새’ 미시간을 무너뜨렸다.

‘뒷북’이었다.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에만 주목하다 놓쳤다. 그래도 백인 노동자층이 밀집된 미시간 민심을 들으며 미국 대선 과정을 복기하고 싶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버니 샌더스 지지자를 공장 앞 식당에서, 커피숍에서, 집 앞에서, 맥줏집에서 만나 길고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몇 가지 자문자답을 해본다. 우선, 샌더스 지지자들을 포함해 노동자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분노는 정당한가? 정당하다고 본다. 이들에게 ‘너희가 만든 자동차가, 텔레비전이, 세탁기가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망한 거야’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국도 1990년대 제조업 우선 정책으로 농촌이 ‘아기 울음소리 없는’ 황폐해진 지역으로 바뀌었다. 농민들이 무능하고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산업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을 강제한 국가가, 그리고 그로 인한 수혜 산업이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미국은 월가의 금융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제조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이런 모순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을 뿐이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샌더스 지지자들의 월가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항의는, 국가와 기업의 태만에 대한 경종이었고 ‘클린턴 반대’로 나타났다.

둘째, 트럼프 당선엔 미국 사회의 주인 자리를 잠식당해온 백인 우월주의 심리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렇다고 본다. 머콤 카운티의 포드자동차 공장 앞 식당에서 만난 한 트럼프 지지자는 “디트로이트 외곽은 치안이 불안해요. 가정을 보살필 남자가 없으니 애들이 문제아가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왜 남자들이 없어요’라고 되묻자 그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귓속말로 “흑인들 문화가 원래 그래요(가정을 돌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흑인을 하대하는 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통째로 뽑아버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갈등을 줄이면 최선이고, 더 커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차선이다. 미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인종 갈등이 줄었고, 그 반대의 경우엔 갈등이 증폭됐다. 소득 불평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인종 갈등이 잠잠해지기는 당분간 어렵다. 게다가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인종 갈등이란 상처에 소금까지 잔뜩 뿌려놨으니 소수 인종들의 공포감과 우월감에 빠져 있는 백인들의 배타주의는 고조될 것이다.

셋째,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유권자들의 고립주의 요구는 지속될까? 그럴 것 같다. 크라이슬러 공장 노동자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게 언제인데, 아직도 한국과 일본,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며 경찰국가 역할을 해야 하느냐”며 “세상은 변했다. 이제 미국인들도 미국을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남의 나라 문제는 신경쓰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를 건드리면 작살내겠다’ 정도다.

1년6개월여의 미국 대선 과정을 되돌아보면, 월가의 지나친 이익 독점을 비판하고 노동자 권리를 옹호해온 사람이 있었다. 다양성이란 문화 진보의 가치로 소수자들의 열정을 담아내고,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평화의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있었다. 선거운동 과정이 때론 서툴렀지만, 결국 버몬트 출신의 ‘샌더스 할아버지’가 미국의 시대정신이 아니었냐고 자문자답해본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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