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대선을 앞둔 2012년 여름, 최순실씨가 소유한 서울 신사동 ㅁ빌딩에 참 많이도 찾아갔다. 정윤회씨의 낡은 사진 한장을 들고 “혹시 이분 아세요”라며 거리를 헤매던 시절이었다. 그들 가족이 산다던 6층엔 인적이 없었고, 5층부터는 계단·엘리베이터가 모두 차단돼 접근도 불가능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탐구기사를 준비할 때였다. 집권이 가장 유력시되는 후보의 주변에선 날마다 ‘취재 실패’가 이어졌다. 또다시 씁쓸함만 곱씹으며 발길을 돌리던 어느 날 밤, 차창 밖으로 ㅁ빌딩 쪽을 무심히 지켜보다 6층에 불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6층은 꺼져 있는 듯했다. 아니, 꺼져 있었다. 아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달리는 버스 안이었다. 너무 멀었다. 잇따른 실패에 지쳐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잘못 봤겠지, 어차피 내일 또 올 텐데. 결국 나는 그해 정윤회도, 최순실도, 정유연(정유라)도 만나지 못했다. 당시 탐구기사에서, 나는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정권을 대하는 역사관과 최태민·정윤회·최순실과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맡아 취재·보도했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새누리당, 특히 친박에선 혹평이 돌아왔다.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 기사에 대해선, 심지어 ‘짜깁기’, ‘찌라시’라고 했다. 그 무렵 나를 대하던 일부 당 관계자들의 싸늘한 시선은 잊을 수가 없다. 자격지심이었을지 모르나, 대선 때 박근혜 캠프 및 새누리당 담당 기자로서의 삶이 쉽진 않았다. 1년이 지나 2013년 7월 한 승마장에서 딸의 경기를 보러 온 정윤회씨를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꼭 뵙고 싶었다”는 인사가 절로 나왔다. 그날 30분가량 이야기하면서, 그는 모든 의혹을 ‘카더라 통신’이라고 부인하고 도리어 피해의식을 토로했다. 그때 쓴 기사는 그런 내용이 돼버렸다. 2014년 말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 취재팀에 참여하면서 또다시 그를 접촉했다. 마찬가지였다. 당시 제기된 ‘십상시’ 의혹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당시 취재팀은 정유라씨 승마 관련 특혜 의혹을 종합적으로 보도했다. 기사가 나온 뒤 지금 최순실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본인 이름으로 된 승마 트로피가 있는 자기 사무실에서 ‘그쪽 버전 스토리’를 들려주며 해명했다. 그해 여름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최순실씨의 조카 장승호씨를 만났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올해 초부터 와 있는 베이징에서, 지난 두달여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 유능하지 못해 지난 몇차례 기회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기자였던 터라, 더욱 심경이 복잡했다. 지금 알게 된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컸다. 왜 더 열심히 취재해서 알아내지 못했나 하는 자책도 컸다. 진심으로 반성한다. <한겨레>를 필두로 이번 사태를 이끌어온 각 언론사 취재진에 존경을 표한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보도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대선 때도 다들 ‘과거사’인 최태민 관련 의혹을 다뤘고, 현재의 자료들은 분명 그때도 있었을 텐데 지금 같은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매체는 내가 찍어서 지면에 실었던 ㅁ빌딩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승마 관련 의혹도 다른 매체의 적극적인 후속 보도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때마다 느꼈던 아쉬움들이, 이제 와 여러 매체의 특종들로 위로를 받는 듯도 하다. 4년 전 여름 그날 밤 ㅁ빌딩에서 본 듯했던 그 불빛이 자꾸만 떠오른다. 후회스럽다. 민망하지만, 다음엔 반드시 달려가겠다. oscar@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최순실 취재 실패’ 기자의 반성문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대선을 앞둔 2012년 여름, 최순실씨가 소유한 서울 신사동 ㅁ빌딩에 참 많이도 찾아갔다. 정윤회씨의 낡은 사진 한장을 들고 “혹시 이분 아세요”라며 거리를 헤매던 시절이었다. 그들 가족이 산다던 6층엔 인적이 없었고, 5층부터는 계단·엘리베이터가 모두 차단돼 접근도 불가능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탐구기사를 준비할 때였다. 집권이 가장 유력시되는 후보의 주변에선 날마다 ‘취재 실패’가 이어졌다. 또다시 씁쓸함만 곱씹으며 발길을 돌리던 어느 날 밤, 차창 밖으로 ㅁ빌딩 쪽을 무심히 지켜보다 6층에 불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6층은 꺼져 있는 듯했다. 아니, 꺼져 있었다. 아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달리는 버스 안이었다. 너무 멀었다. 잇따른 실패에 지쳐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잘못 봤겠지, 어차피 내일 또 올 텐데. 결국 나는 그해 정윤회도, 최순실도, 정유연(정유라)도 만나지 못했다. 당시 탐구기사에서, 나는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정권을 대하는 역사관과 최태민·정윤회·최순실과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맡아 취재·보도했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새누리당, 특히 친박에선 혹평이 돌아왔다.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 기사에 대해선, 심지어 ‘짜깁기’, ‘찌라시’라고 했다. 그 무렵 나를 대하던 일부 당 관계자들의 싸늘한 시선은 잊을 수가 없다. 자격지심이었을지 모르나, 대선 때 박근혜 캠프 및 새누리당 담당 기자로서의 삶이 쉽진 않았다. 1년이 지나 2013년 7월 한 승마장에서 딸의 경기를 보러 온 정윤회씨를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꼭 뵙고 싶었다”는 인사가 절로 나왔다. 그날 30분가량 이야기하면서, 그는 모든 의혹을 ‘카더라 통신’이라고 부인하고 도리어 피해의식을 토로했다. 그때 쓴 기사는 그런 내용이 돼버렸다. 2014년 말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 취재팀에 참여하면서 또다시 그를 접촉했다. 마찬가지였다. 당시 제기된 ‘십상시’ 의혹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당시 취재팀은 정유라씨 승마 관련 특혜 의혹을 종합적으로 보도했다. 기사가 나온 뒤 지금 최순실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본인 이름으로 된 승마 트로피가 있는 자기 사무실에서 ‘그쪽 버전 스토리’를 들려주며 해명했다. 그해 여름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최순실씨의 조카 장승호씨를 만났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올해 초부터 와 있는 베이징에서, 지난 두달여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 유능하지 못해 지난 몇차례 기회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기자였던 터라, 더욱 심경이 복잡했다. 지금 알게 된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컸다. 왜 더 열심히 취재해서 알아내지 못했나 하는 자책도 컸다. 진심으로 반성한다. <한겨레>를 필두로 이번 사태를 이끌어온 각 언론사 취재진에 존경을 표한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보도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대선 때도 다들 ‘과거사’인 최태민 관련 의혹을 다뤘고, 현재의 자료들은 분명 그때도 있었을 텐데 지금 같은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매체는 내가 찍어서 지면에 실었던 ㅁ빌딩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승마 관련 의혹도 다른 매체의 적극적인 후속 보도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때마다 느꼈던 아쉬움들이, 이제 와 여러 매체의 특종들로 위로를 받는 듯도 하다. 4년 전 여름 그날 밤 ㅁ빌딩에서 본 듯했던 그 불빛이 자꾸만 떠오른다. 후회스럽다. 민망하지만, 다음엔 반드시 달려가겠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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