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우리는 중국과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가질 것이다. 우리한테도 이익이 되고 중국도 이익을 얻을 것이다. 테리(주중 미국대사 지명자 테리 브랜스태드)가 그 길을 이끌 것이다.”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잘 알고 있다. 무역 등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두 말은 양립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과 상호 존중의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중국 정책’을 무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했던 말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다. 첫번째 언급은 지난 8일(현지시각) 아이오와주 ‘승리 감사 유세’에서, 두번째 언급은 11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왔다.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안보 관련 발언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그가 자랑삼아 얘기하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뜻이 이면에 담겨 있다. 일관성과 안정성을 내세워온 대국 외교의 기본 틀은 트럼프 시대에는 깨질 것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일차적으로 그의 기질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앞서 얘기했던 중국 발언들을 보면, 중국과의 ‘상호 존중’은 브랜스태드 지명자를 지지자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자신의 인선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의 중국’ 발언은 앵커가 트럼프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전화 통화를 살짝 비꼬는 가운데 나왔다. 따라서 트럼프 특유의 본능적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자랑하기 위해 혹은 방어하기 위해, 필요와 상황에 따라 트럼프의 발언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예측 불가능성’이 트럼프의 평생 신조라는 데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펴낸 자서전 <불구가 된 미국-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법>에서 “기습이 전투에서 승리의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사람들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예측 불가능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는 상대방에게 패를 보여주지 않는 이런 예측 불가능성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예측 불가능성을 성공 신화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를 버릴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습관처럼 자랑했던 것과 비슷하다.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 외교의 추락과 세계 외교 지형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당장, 미국 국무부나 국방부의 실무자들은 정책 결정을 하면서 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이 곧 일종의 정책 가이드라인인데, 중국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것인지 싸우라는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확실한 지침이 없으면 거대한 관료조직들은 잘 움직이지 않고 해태를 한다. 상대 국가의 미국에 대한 불신도 더욱 커지게 된다. 외교안보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방의 뺨을 때리고 미안하다고 하면, 상대방은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뺨 때린 것을 더욱 가슴에 묻어둔다. 그렇다면 중국이 트럼프의 대중국 발언 가운데 ‘상호 존중’과 ‘하나의 중국 폐기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는 자명하다. 미-중 간의 전략적 불신이 깊어지고 중국의 경제적 보복과 군사적 대비도 강화될 것이다. 동맹국이나 우호국들도 당장은 미국이 휘두르는 완력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협상과 새로운 관계 진전을 피하게 될 것이다. ‘정글의 법칙’이 황금률이 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한-미 동맹 불변’, ‘대북 제재 강화 유지’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며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박근혜 외교로는 미증유의 국제정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yyi@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트럼프 시대와 박근혜 외교 / 이용인 |
워싱턴 특파원 “우리는 중국과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가질 것이다. 우리한테도 이익이 되고 중국도 이익을 얻을 것이다. 테리(주중 미국대사 지명자 테리 브랜스태드)가 그 길을 이끌 것이다.”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잘 알고 있다. 무역 등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두 말은 양립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과 상호 존중의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중국 정책’을 무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했던 말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다. 첫번째 언급은 지난 8일(현지시각) 아이오와주 ‘승리 감사 유세’에서, 두번째 언급은 11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왔다.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안보 관련 발언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그가 자랑삼아 얘기하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뜻이 이면에 담겨 있다. 일관성과 안정성을 내세워온 대국 외교의 기본 틀은 트럼프 시대에는 깨질 것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일차적으로 그의 기질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앞서 얘기했던 중국 발언들을 보면, 중국과의 ‘상호 존중’은 브랜스태드 지명자를 지지자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자신의 인선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의 중국’ 발언은 앵커가 트럼프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전화 통화를 살짝 비꼬는 가운데 나왔다. 따라서 트럼프 특유의 본능적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자랑하기 위해 혹은 방어하기 위해, 필요와 상황에 따라 트럼프의 발언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예측 불가능성’이 트럼프의 평생 신조라는 데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펴낸 자서전 <불구가 된 미국-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법>에서 “기습이 전투에서 승리의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사람들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예측 불가능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는 상대방에게 패를 보여주지 않는 이런 예측 불가능성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예측 불가능성을 성공 신화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를 버릴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습관처럼 자랑했던 것과 비슷하다.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 외교의 추락과 세계 외교 지형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당장, 미국 국무부나 국방부의 실무자들은 정책 결정을 하면서 머리를 싸매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이 곧 일종의 정책 가이드라인인데, 중국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것인지 싸우라는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확실한 지침이 없으면 거대한 관료조직들은 잘 움직이지 않고 해태를 한다. 상대 국가의 미국에 대한 불신도 더욱 커지게 된다. 외교안보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방의 뺨을 때리고 미안하다고 하면, 상대방은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뺨 때린 것을 더욱 가슴에 묻어둔다. 그렇다면 중국이 트럼프의 대중국 발언 가운데 ‘상호 존중’과 ‘하나의 중국 폐기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는 자명하다. 미-중 간의 전략적 불신이 깊어지고 중국의 경제적 보복과 군사적 대비도 강화될 것이다. 동맹국이나 우호국들도 당장은 미국이 휘두르는 완력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이겠지만, 협상과 새로운 관계 진전을 피하게 될 것이다. ‘정글의 법칙’이 황금률이 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한-미 동맹 불변’, ‘대북 제재 강화 유지’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며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박근혜 외교로는 미증유의 국제정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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