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지역인 왕징에는 대성산관이라는 북한 식당이 있었다. 북한의 ‘국립묘지’인 혁명열사릉이 있는 대성산의 이름을 딴 식당으로, 그 유명한 냉면집 옥류관의 유일한 중국 분점이라고 한다. 곧 대성산관 냉면은 옥류관 요리사가 베이징에 와서 만들어주는 냉면인 셈이다. 베이징엔 ‘옥류관’이라는 북한 식당도 있지만, 실제 평양 옥류관과는 무관하다. 예전에 대성산관을 자주 찾던 한국 손님들은 2차로 가기 좋은 호프집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했다. 대동강맥주가 있었고, 다양한 안주가 있었다. 홀 중앙 무대에는 북한 식당에 가면 으레 접하는 여성 복무원(종업원)들의 생음악도 있었다. 그들은 흐드러지게 튕기는 통기타 반주로 ‘홍도야 우지 마라’, ‘낭랑 18세’ 같은 해방 전 가요를 불러젖히며 테이블을 돌아다녔고, 남쪽 손님들은 이내 함께 흥얼대며 동참했다. 복무원들 중에는 출중한 미모로 ‘대성산 성유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도 있었다. 전날 저녁 ‘성유리’가 동료 주재원들에게 “아무개 오빠는 오늘 왜 안 오셨습니까?”라고 묻더라는 전언을 듣던 날, 아무개씨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렇게 왕징에서 10여년 영업했던 대성산관이 이사를 간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이사 전날 냉면을 먹으러 온 손님에게, 복무원은 “저희 연교로 내일 이사 갑니다”라고 말했다. ‘연교’는 베이징의 위성도시 옌자오의 우리식 발음이다. 베이징 중심에서 30여㎞ 떨어졌으며, 1시간여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산다. 베이징시의 행정기능이 옮겨가게 되는 퉁저우에서도 멀지 않다. 옌자오와 퉁저우는 최근 베이징 부동산 폭등으로 많은 한인들이 옮겨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 손님은 ‘그쪽이 더 장사가 잘될 걸로 봤나 보다’라고 여겼다. 당시 함께 입주해 있던 주변 상인들은 사정을 좀 알고 있었다. 한 상인은 “위층에서 소음 신고를 많이 했다”고 했다. 주상복합건물인 탓에 2층 대성산관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위쪽 거주자들의 불만이 높았다는 것이다. 다른 상인은 “이 건물이 취사를 할 수 없는 건물이 됐다”고 했다. 건물주는 “임대료 납부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 건물이 사용 용도상 식당으로는 허가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했다. 1층에서 계속 영업을 하고 있던 한국식당에도 물었는데 그때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몇달 뒤 이사를 갔다. 지금 이 건물엔 미용실, 세탁소, 한의원, 여행사, 카페 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 3월 자국민들에게 내린 ‘북한식당 이용자제 권고’는 얼마나 영향이 있었을까? 베이징의 한국 대사관 사람들은 워낙 껄끄러워했고, 공공기관·공기업 사람들은 지침을 따랐을 것이다. 대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직원들을 단속했다. 어느 정도 매출이 줄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5월에 이사를 가게 된 유일한 이유가 3월에 나온 ‘권고’ 때문만이라고 해도 좋을까? 취향과 호기심으로 북한식당을 찾는 이들은 지금도 있다. 며칠 전 옌자오의 대성산관을 다녀왔다. 새로 문을 연 것은 8월이었다고 했다. 복무원들은 그대로였다. 함께 간 옛 단골의 등장에, 몇몇은 “이렇게 오랜만에…”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규모는 커져 있었다. 왕징에선 800㎡가량이었는데, 지금은 작은 호텔의 3층짜리 별관을 모두 쓰면서 1층에 테이블 10개의 홀, 2~3층에 방 10개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식도, 공연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다만, 중국인 손님이 늘었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왕징의 옛 한국 손님들도, 그날의 우리들처럼 일부러 찾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찾아온다고요?” “저희가 억지로 끌고 올 순 없잖습니까? 호호호.” oscar@hani.co.kr
중국 |
[특파원 칼럼] 대성산관이 이사를 갔다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지역인 왕징에는 대성산관이라는 북한 식당이 있었다. 북한의 ‘국립묘지’인 혁명열사릉이 있는 대성산의 이름을 딴 식당으로, 그 유명한 냉면집 옥류관의 유일한 중국 분점이라고 한다. 곧 대성산관 냉면은 옥류관 요리사가 베이징에 와서 만들어주는 냉면인 셈이다. 베이징엔 ‘옥류관’이라는 북한 식당도 있지만, 실제 평양 옥류관과는 무관하다. 예전에 대성산관을 자주 찾던 한국 손님들은 2차로 가기 좋은 호프집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했다. 대동강맥주가 있었고, 다양한 안주가 있었다. 홀 중앙 무대에는 북한 식당에 가면 으레 접하는 여성 복무원(종업원)들의 생음악도 있었다. 그들은 흐드러지게 튕기는 통기타 반주로 ‘홍도야 우지 마라’, ‘낭랑 18세’ 같은 해방 전 가요를 불러젖히며 테이블을 돌아다녔고, 남쪽 손님들은 이내 함께 흥얼대며 동참했다. 복무원들 중에는 출중한 미모로 ‘대성산 성유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도 있었다. 전날 저녁 ‘성유리’가 동료 주재원들에게 “아무개 오빠는 오늘 왜 안 오셨습니까?”라고 묻더라는 전언을 듣던 날, 아무개씨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렇게 왕징에서 10여년 영업했던 대성산관이 이사를 간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이사 전날 냉면을 먹으러 온 손님에게, 복무원은 “저희 연교로 내일 이사 갑니다”라고 말했다. ‘연교’는 베이징의 위성도시 옌자오의 우리식 발음이다. 베이징 중심에서 30여㎞ 떨어졌으며, 1시간여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산다. 베이징시의 행정기능이 옮겨가게 되는 퉁저우에서도 멀지 않다. 옌자오와 퉁저우는 최근 베이징 부동산 폭등으로 많은 한인들이 옮겨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 손님은 ‘그쪽이 더 장사가 잘될 걸로 봤나 보다’라고 여겼다. 당시 함께 입주해 있던 주변 상인들은 사정을 좀 알고 있었다. 한 상인은 “위층에서 소음 신고를 많이 했다”고 했다. 주상복합건물인 탓에 2층 대성산관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위쪽 거주자들의 불만이 높았다는 것이다. 다른 상인은 “이 건물이 취사를 할 수 없는 건물이 됐다”고 했다. 건물주는 “임대료 납부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 건물이 사용 용도상 식당으로는 허가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했다. 1층에서 계속 영업을 하고 있던 한국식당에도 물었는데 그때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몇달 뒤 이사를 갔다. 지금 이 건물엔 미용실, 세탁소, 한의원, 여행사, 카페 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 3월 자국민들에게 내린 ‘북한식당 이용자제 권고’는 얼마나 영향이 있었을까? 베이징의 한국 대사관 사람들은 워낙 껄끄러워했고, 공공기관·공기업 사람들은 지침을 따랐을 것이다. 대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직원들을 단속했다. 어느 정도 매출이 줄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5월에 이사를 가게 된 유일한 이유가 3월에 나온 ‘권고’ 때문만이라고 해도 좋을까? 취향과 호기심으로 북한식당을 찾는 이들은 지금도 있다. 며칠 전 옌자오의 대성산관을 다녀왔다. 새로 문을 연 것은 8월이었다고 했다. 복무원들은 그대로였다. 함께 간 옛 단골의 등장에, 몇몇은 “이렇게 오랜만에…”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규모는 커져 있었다. 왕징에선 800㎡가량이었는데, 지금은 작은 호텔의 3층짜리 별관을 모두 쓰면서 1층에 테이블 10개의 홀, 2~3층에 방 10개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식도, 공연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다만, 중국인 손님이 늘었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왕징의 옛 한국 손님들도, 그날의 우리들처럼 일부러 찾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찾아온다고요?” “저희가 억지로 끌고 올 순 없잖습니까? 호호호.”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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