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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9 18:20 수정 : 2017.02.09 20:57

길윤형
도쿄 특파원

부산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며 ‘혐한’을 부추기는 일본 주류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일본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에 당황스러워하는 일본인들의 반응을 볼 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기간 동안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은 도와야 하지만, 미국이 공격을 당해도 일본은 우리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거듭하며 미-일 동맹의 의의를 깎아내렸고, 아베 신조 총리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사실상 파기했다. 그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의 자동차 산업과 환율 정책 등에 대해 공세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아베 총리는 10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 성장고용 이니셔티브’란 이름이 붙은 양국 간 경제 협력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일본이라는 꼬장꼬장하고 자존심 강한 나라가 왜 이렇게 낮은 자세를 보일까. 일본한테 “미-일 동맹만이 외교·안보정책의 기축”(1월20일 아베 총리의 시정방침연설)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상징되는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 속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해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고,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동맹 강화 작업을 마쳤다. 한 바구니에 ‘몰빵’해버린 달걀을 지키기 위해 미국을 향해 엄청난 동맹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동맹의 대가는 일본인들의 곳곳에서 삶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지난달 21~22일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를 뛰어넘는 극동 최대의 군사기지로 거듭나고 있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를 방문했다. 이와쿠니 시민들은 오랜 숙원은 소음 피해가 많던 미 해병대 이와쿠니 기지의 활주로를 1㎞ 정도 바다 쪽으로 이전하는 공사였다. 이 사업은 1997년 3월 시작됐고, 매립에 쓰이는 흙은 도시의 한가운데 있는 해발 120m의 아타고산을 허물어 충당했다. 그리고 이와쿠니시와 야마구치현은 산을 깎아 만들어진 터에 1300가구 6500명 정도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역 시민단체인 ‘아타고야마를 지키는 모임’의 오카무라 히로시(73) 대표는 “이 사업이 끝나면 이와쿠니의 주거 환경이 매우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2006년 5월 확정된 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현재 도쿄 근교의 요코타 기지에 있는 미국 항공모함의 함재기 부대인 제5항모항공단의 이와쿠니 이전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 정부와 야마구치현은 주민들이 요구해 왔던 택지개발 계획을 백지화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당시 시장을 압박하기 위해 애초 약속했던 청사 신축 보조금을 일방적으로 동결했다. 현재 이 터에는 이전해 오는 미군 장교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고급 주택지가 조성되는 중이다. 이 공사비는 모두 일본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많은 동맹의 대가를 지불해 왔다. 우린 미국을 위해 수도 한복판의 드넓은 기지와 연간 1조원에 육박하는 방위비 분담금, 성병 검사를 마친 여성들의 ‘깨끗한’ 몸까지 제공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한-중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통해 “당신은 어느 편이냐”란 질문에 답하길 요구 받는 중이다.

동맹의 대가는 우리가 지불 가능한 영역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도 소중한 것을 하나의 바구니에 ‘몰빵’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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