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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1 18:23 수정 : 2017.06.01 20:30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8일 폭탄선언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무례함에 메르켈 총리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한 듯 “우리 유럽인들은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이 주도한 대서양 동맹 70년 체제는 그렇게 균열이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점점 고립주의로 향하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판이 크게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 핵심 축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월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리고 5월 초 국무부 직원 대상 연설에서 “다음 50년 동안 중국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상호 핵심이익에 대한 보장을 통해 미-중 간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신형대국 관계론’을 닮았다.

미국과 중국이 다음 반세기를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의 세력 교체기에 반드시 충돌이 발생한다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할 수 있다. 중국은 아시아 지역 패권을 노린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이를 인정할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이미, 중국이 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에선 중국의 영향권 확보 전략이 상당히 먹혀들고 있다. 미국 해군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5월24일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했지만 그뿐이었다. 미국 쪽의 요란한 선전전도 없었고, 중국의 반발도 뻔한 거였다.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미·중이 타협 지점을 찾은 것 같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기지화를 상당히 진척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이를 되물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 대중국 강경파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도 이런 미국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서너가지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미국이 ‘항행의 자유’ 작전 사실을 가능한 한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두번째로 미국이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을 부추기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 전함이 중국의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항행할 때 중국의 전함들이 뒤따르며 ‘감시하는’ 것이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여유를 찾은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상당한 우선순위를 둘 것이다.

미국의 구심력 약화는 중-일 관계의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미-일 동맹 강화와 자체 군사력 강화라는 이중의 전략을 취해왔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일본은 미-일 동맹의 테두리를 서서히 벗어나는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29일부터 3일 동안 이어진 방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워싱턴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내년 초 중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일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한 변수들이 많아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주시해야 할 움직임이다.

최소한 트럼프 행정부 동안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은 추세적 하락을 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인종적 갈등 등은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이런 국내 모순을 다시 부채질하며 대외관계에도 투영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약화가 태평양을 건너 어떤 나비효과를 유발할지 모든 상상 가능한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북핵과 남북관계의 배를 저어가는 과정에서 역풍에 당황하지 않고 순풍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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