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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8 18:16 수정 : 2017.06.08 20:49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국방부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다. 연초에 뭔가에 쫓기듯 서두르면서 ‘알박기’라고 비판받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가 국방부 수뇌부의 보고 누락 논란 끝에 결국 제동이 걸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사대 추가 반입’을 확인하기 불과 이틀 전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한 탓에 은폐 의혹을 받으며 조사를 받았다. 그와 더불어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감사원 직무감찰 가능성이 거론된다. ‘꼬리 자르기’ 논란은 있지만 ‘국방부의 꽃’ 국방정책실장이 자리를 내놓고 쫓겨난 것은 분명 조직 전체에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체면은 그 성격상 ‘총량 보존의 법칙’을 점쳐볼 만하다. 누군가의 체면을 완전히 챙기면, 다른 누군가는 완전히 구겨진다. 서로 약간씩 양보하면, 모두 ‘적당한 체면’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국방부의 깎인 체면은 안타깝지만, 그만큼 세워졌을 체면은 누구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것은 지난달 특사단의 방중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해찬 특사 면전에 ‘황교안 사태’를 거론했다. 황교안 당시 총리가 지난해 6월 말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국가주석 등 지도부를 만났고, 그때는 ‘배치 결정’ 이야기가 없더니 불과 열흘 뒤 전격 발표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모든 중국 관원들이 암송하는 “전략 균형 훼손, 사드 반대”라는 주문을 그날 특별히 시 주석이 직접 외웠는데, 한국이 이를 말끔히 무시하면서 전체 중국의 체면이 무너졌다는 맥락이다.

중국의 매서운 보복 조처가 이때 ‘체면 손상’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걸 고려하면, 그 체면의 회복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국방부가 ‘보고 누락’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이 중국은 ‘체면 회복’이 진행되는 듯하다.

7일 청와대의 ‘환경영향평가 이후 사드 추가배치 결정’ 발표는, 중국에서 ‘배치 잠정중단’(暫停)으로 번역돼 전해졌다. 중국 당국이 한국과 미국에 요구해온 ‘사드 배치 프로세스 중단’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올해 초 중국이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한·미에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을 각각 요구한 ‘쌍중단’(雙暫停)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중국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된 듯한 뉘앙스고, 실제로도 중국이 반대해온 연내 배치 가속화는 힘들어 보인다. 또 중국 관영매체들은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두고 “광범한 민의를 돌보지 않고 사드 배치를 추진했다”는 혐의를 주장해왔는데,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관료들을 새 정부가 질책하면서 이마저도 고려한 모양새가 됐다.

낙관론자들은 중국의 체면 회복이 이뤄지고 레이더의 탐지 방향 및 거리 등 일부 기술 협의를 거치면 중국과의 ‘사드 타협’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정부건 문재인 정부건, 미국에 퇴짜를 놓으며 이미 들여온 무기를 돌려보내는 건 어렵기에 중국이 수용하도록 하는 것만 남았다는 현실론이다. 그런 면에서 국방부의 망신살은, 어쩌면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적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매를 맞으며 망신을 당한 뒤 조조에게 거짓 투항을 했던 황개의 고육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주말에 영화가 보고 싶어 스마트티브이를 켰는데, 몇달 전 단번에 모조리 사라진 한국 영화는 하나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국인 원장이 있어 한동안 갔던 미용실이 느닷없이 문을 닫은 뒤 새로 다니기 시작한 미용실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중국 내 롯데마트 대부분은 지금도 영업중단 상태고 문을 연 곳은 한산할 뿐이다.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목소리는, 아직 이곳에선 공허하다. 한 달 뒤면 사드 배치 결정 발표 1주년이 된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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