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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22 17:52 수정 : 2017.06.22 21:03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미국은 대북 대화 재개 조건을 ‘비핵화’로 대폭 강화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이 명제가 진실인 양 굳어져 떠돌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주요 근거로도 활용된다. 하지만 이는 ‘가짜 뉴스’까지는 아니어도, 사실에 가깝지 않다.

발단은 일주일 전인 지난 15일(현지시각)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중단을 대화의 조건으로 밝혔고, 이에 대해 지지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노어트 대변인은 “우리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회담을 위해선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어트 대변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180도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 안에는 아예 북한과 대화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내일부터 열심히 모든 핵프로그램 및 기존 핵무기를 해체하기 시작해도 아마 최소한 십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기 위해 미 국무부가 하루 만에 대북정책을 바꿨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발언은 그만큼 모호한 말이었다.

사실, <폭스 뉴스> 앵커이던 노어트 대변인은 6일 처음 국무부 브리핑을 한 ‘신참’ 대변인이다. 15일이 네번째 브리핑이었다. 세계 곳곳에 걸쳐 있는 까다로운 현안을 다그치는 기자들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대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대변인실에 노어트 대변인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었다. 동아태 대변인실은 한국 담당자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현안에 훨씬 더 밝다.

얼리샤 에드워즈 동아태 대변인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신뢰성 있고 믿을 만한 협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조처를 하고 도발을 자제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답변했다. 협상의 목표가 비핵화에 있음을 북한이 밝히고, 이에 대한 성의 있는 조처와 긴장 고조 행위 자제를 협상 시작의 문턱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조건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선언은 했지만, 비공개 모임에선 아직까지는 자신들의 대북 정책이 오바마 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한다. 새로운 동력과 아이디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안타까운 죽음이 대북 대화의 시기를, 어쩌면 꽤 늦출 수는 있지만 북핵 문제를 마냥 방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대화 재개를 위해선 북한이 충족시켜야 할 낮은 문턱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들어선 ‘조건 없는 대화 재개’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1월 초 당대회를 앞두고 9월 말까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과의 협상을 시작하게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중국 전문가의 전언도 있다.

이런 와중에 문 대통령의 ‘제안’이 있었다. 누구도 우리는 미-중의 논의만 지켜보고 있으면 된다고 얘기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다만, 일단 던져보는 식보다는 미국과 중국, 북한의 반응을 비공식적으로 조심스럽게 타진한 뒤에 실현 가능한 제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일의 순서로 볼 때 더 현명할 수 있다. 아무리 그럴듯한 아이디어도 주변국과의 신뢰가 없으면 실행 가능하지 않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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