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파원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기다 보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단어들이 있다. 대표적인 단어가 ‘자이니치 코리안’(재일 코리안)이라는 말이다. <한겨레>에 ‘세계의 창’ 칼럼을 쓰고 있는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 교수의 글에도 ‘자이니치 코리안’이라는 단어가 가끔 등장하는데,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재일동포라고 옮겼다. 재일 코리안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어색한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은 재일 코리안이 재일동포를 표현하는 더 정확한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해방 후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한국과 조선 두 개로 나뉘었다. 일본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인을 일본 국적자로 간주하면서도 호적은 조선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면서 ‘내선일체’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2차대전에서 패전한 뒤 일본은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했다. 1952년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외국인등록증에서 국적을 당사자가 희망하면 1948년 정부가 출범한 한국으로 적을 수 있게 했다. 한국이라는 표기 신청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편의상 조선이라고 표기했다. 한국을 뜻하는 것도 북한을 뜻하는 것도 아닌 조선이라는 국적 표기(일본에서는 무국적 취급)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한 역사를 반영한다. 일본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조선적 재일동포는 3만2461명이다. 일본 내 한국 국적자는 45만3096명이다. 분단된 조국은 재일동포들에게 줄기차게 선택을 강요해왔다. ‘재일 코리안’ 윤건차의 <자이니치의 정신사>에는 이승만 정부가 전후 일본을 통치하던 미국 연합군최고사령부(GHQ)에 “재일동포는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라”고 요구한 사실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조선적 불온시는 몇십년이 지나도 계속됐다. 한국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서 조선적 재일동포는 한국 정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면 한국 방문을 허가해줬다. 하지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조선적 동포의 한국 입국을 막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강창일 의원실이 공개한 외교부 자료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률은 100%(3358건)였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엔 신청 건수(401건)가 5년 전에 비해 8분의 1로 줄어들었고, 발급률도 43%로 급감했다. 총련 계열 운동단체 사람들은 조선적 동포가 한국 영사관에 가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라며 여행증명서를 내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재일동포 이름 몇몇을 대면서 이들이 한국적인지 조선적인지를 캐물어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일본 기자도 있다. 알고 보니 한국 정부 관계자는 정보기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을 자유롭게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정권에서 여행증명서 발급을 무기로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을 가로막은 일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 결정에 박수를 치고 싶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을 가로막는 일은 없었으면 싶다. 이념이 의심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한국 방문을 가로막는 속 좁은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조선이라는 단어 / 조기원 |
도쿄특파원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기다 보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단어들이 있다. 대표적인 단어가 ‘자이니치 코리안’(재일 코리안)이라는 말이다. <한겨레>에 ‘세계의 창’ 칼럼을 쓰고 있는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 교수의 글에도 ‘자이니치 코리안’이라는 단어가 가끔 등장하는데,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재일동포라고 옮겼다. 재일 코리안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어색한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은 재일 코리안이 재일동포를 표현하는 더 정확한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해방 후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한국과 조선 두 개로 나뉘었다. 일본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인을 일본 국적자로 간주하면서도 호적은 조선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면서 ‘내선일체’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2차대전에서 패전한 뒤 일본은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했다. 1952년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외국인등록증에서 국적을 당사자가 희망하면 1948년 정부가 출범한 한국으로 적을 수 있게 했다. 한국이라는 표기 신청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편의상 조선이라고 표기했다. 한국을 뜻하는 것도 북한을 뜻하는 것도 아닌 조선이라는 국적 표기(일본에서는 무국적 취급)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한 역사를 반영한다. 일본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조선적 재일동포는 3만2461명이다. 일본 내 한국 국적자는 45만3096명이다. 분단된 조국은 재일동포들에게 줄기차게 선택을 강요해왔다. ‘재일 코리안’ 윤건차의 <자이니치의 정신사>에는 이승만 정부가 전후 일본을 통치하던 미국 연합군최고사령부(GHQ)에 “재일동포는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라”고 요구한 사실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조선적 불온시는 몇십년이 지나도 계속됐다. 한국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서 조선적 재일동포는 한국 정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면 한국 방문을 허가해줬다. 하지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조선적 동포의 한국 입국을 막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강창일 의원실이 공개한 외교부 자료를 보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률은 100%(3358건)였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엔 신청 건수(401건)가 5년 전에 비해 8분의 1로 줄어들었고, 발급률도 43%로 급감했다. 총련 계열 운동단체 사람들은 조선적 동포가 한국 영사관에 가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라며 여행증명서를 내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재일동포 이름 몇몇을 대면서 이들이 한국적인지 조선적인지를 캐물어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일본 기자도 있다. 알고 보니 한국 정부 관계자는 정보기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을 자유롭게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정권에서 여행증명서 발급을 무기로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을 가로막은 일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 결정에 박수를 치고 싶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을 가로막는 일은 없었으면 싶다. 이념이 의심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한국 방문을 가로막는 속 좁은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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