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8.31 18:31 수정 : 2017.08.31 20:48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8월6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분위기는 어지간히도 험악했던 모양이다. 강경화 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의 첫 회담인데, 중국 쪽에선 두 사람이 “차오자”(?架, 말다툼)를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차오자’는 너무나 적나라한 단어여서 ‘고상한’ 외교가에서는 결코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표현인데,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니 들으면서도 놀랐다.

한국 쪽 뒷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담에 대해 <티브이조선>은, 왕이 부장은 “중국 쪽 얘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성급하게 표정으로 나타냈”으며, 강 장관은 “왕 부장의 말을 다 받아적은 뒤 하나하나 설명했고, 중국의 사드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 스타일을 보면 충분히 짐작되는 장면이다. 왕 부장은 선이 굵은 얼굴과 풍부한 표정 그리고 자신 있는 손짓으로 주장을 펼치고, 강 장관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졌을 것이다. 동석한 ‘관객’들에겐, 왕 부장은 새로운 상대를 만나 기선 제압을 시도하고, 강 장관은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구도로 보였을 테니 ‘차오자’도 무리한 표현이 아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른바 ‘보복 조처’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대북 제재 공조를 요청하는 한국의 대중국 외교는, 전임 정부와 성격이 판이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넘었는데도 바뀐 게 없다. 이걸 일관성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변화의 예외로 받아들여야 할까? 강 장관은 왕 부장에게 ‘사드 보복’에 항의하지 않았다지만, ‘차오자’ 탓에 시간이 모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강경화-왕이 회담에 앞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베이징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비공개로 만났지만, 이 또한 분위기가 스산했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현실은 전임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이었던 김장수 주중대사의 ‘미뤄진 퇴장’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김 대사는 지난주 한-중 수교 25주년 행사의 주최자였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참석 규모로 나름 성공을 거두자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반대로, 사드 잔여 발사대 4기의 추가배치 결정이 나온 지난 7월 중국 외교부에 불려가 항의를 들은 것도 김 대사였다. 한-미가 사드 배치 검토와 배치를 각각 확정한 지난해 2월과 7월에 이어 세 번째다. 한국 대사가 이렇게 많은 초치를 당하는 일, 심지어 자신을 임명한 정부가 물러나고 새로 들어선 정부를 대표하면서 항의를 받는 일은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새로운 주중대사 인선이 발표됐다. 대통령과 ‘직통’이 가능하다는 노영민 전 의원의 내정 사실은 정권 출범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알려졌지만, 과연 중국 경험 없는 그가 외로울 수 있는 베이징 생활에 잘 적응할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위해 일찍 떠나진 않을지 우려도 동시에 나왔다.

몇주 전 베이징을 다녀간 선배는 내게 “얼른 들어와라. 세상 바뀌었다”고 했다. 정권 교체로 많은 것이 좋아지고 있으니 무사히 임기 마치고 돌아오라는 덕담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위세가 서슬 퍼렇던 시절 베이징에 부임해 와선지, 많은 서울발 소식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갑을 찬 모습부터 시작해서, 국정원 연루 사건들의 재조사, 각본 없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 소식 등 응당 그래야 할 일들마저 낯설게 느껴지니, 과연 지난 10년 어떤 세상을 살았던 건가 싶어 몹시 안타깝다. 노영민 내정자는 과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까? 대사 하나 바뀐다고 뭐 그리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하지만, 베이징에서 맛보지 못한 그 바람의 맛이 궁금하긴 하다.

oscar@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