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일본 중의원 조기총선에서 자민·공명 집권 여당이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 뒤인 23일 인터뷰를 한 나카노 고이치 조치대 교수는 일본 정치의 우경화 경향을 연구해온 학자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에서 나카노 교수는 일본 정치의 우경화 경향을 진자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진자는 흔들리기 때문에 왼쪽으로도 갔다가 오른쪽으로도 간다. 하지만 진자의 축 자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진자가 왼쪽으로 흔들릴 때도 예전만큼 왼쪽으로 가지 못한다. 일본 현대 정치는 1994년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취임이나 2009년 민주당의 정권교체 성공처럼 왼쪽으로 움직일 때가 있었지만, 축 자체는 계속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일본인 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리버럴(진보)로 보이는 정치인들도 리버럴이 아니다. 예전에 비해서 상황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나카노 교수는 2차대전 패전 후 일본 보수가 경무장·경제성장 중시 노선을 취한 ‘보수 본류’에서 냉전 후 신자유주의와 복고적 국가주의가 결합한 ‘신우파연합’으로 이행했다고 분석한다. 신우파연합의 신세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시절 힘을 쌓아 나타난 결과가 아베 신조 정부라고 진단한다. 나카노 교수뿐만 아니라 일본의 진보적 인사들은 일본 우경화의 중요 분기점을 1997년으로 본다. 1997년은 ‘백래시(반발)의 원년’이라고 불린다. 1995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 그리고 이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담은 교과서가 대거 등장하자, 1997년 극우적 역사관으로 무장한 이들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출범시켰다. 아베 정부를 움직이는 단체로 주목받는 극우단체 ‘일본회의’가 결성된 것도 1997년이었다. 야당도 점점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아시아 중심 외교를 주장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1년도 못 채우고 사임했고, 민주당 정부의 마지막 총리는 민주당 내 보수파인 노다 요시히코였다. 2012년 출범한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을 기초로 한 일본의 전후체제까지 허물어가고 있다. 2014년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위헌적 방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각의 결정(한국의 국무회의 의결)했다. 이듬해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 정비인 안보법제 제개정을 강행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자위권 발동 요건을 애매하게 만들어서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베 정부가 개헌을 할 현실적 필요성 자체는 없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부는 총선 압승 뒤 일단은 몸을 낮추고 있다. 아베 총리 자신뿐만 아니라 각료들은 “겸허”, “노력” 같은 겸손해 보이는 단어를 연발한다. 숨 고르기일 것이다. 아베 정부가 일본 전후 평화주의의 이념적 핵심인 헌법을 개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향우는 계속되고 있다. 총선 전 찾은 도쿄의 메이지신궁에는 ‘교육칙어’를 적은 팸플릿이 비치돼 있었다. 팸플릿에는 “(교육칙어는) 우리 국민의 영원불멸한 도덕교육의 기초라고 이야기된다”고 적혀 있었다. 일왕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교육칙어는 일본 군국주의 교육의 상징이었다. 교육칙어로 교육받은 일본 젊은이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본 정치 우경화를 강 건너 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이유다.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진자의 축은 어디까지 움직일까 / 조기원 |
도쿄 특파원 일본 중의원 조기총선에서 자민·공명 집권 여당이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 뒤인 23일 인터뷰를 한 나카노 고이치 조치대 교수는 일본 정치의 우경화 경향을 연구해온 학자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에서 나카노 교수는 일본 정치의 우경화 경향을 진자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진자는 흔들리기 때문에 왼쪽으로도 갔다가 오른쪽으로도 간다. 하지만 진자의 축 자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진자가 왼쪽으로 흔들릴 때도 예전만큼 왼쪽으로 가지 못한다. 일본 현대 정치는 1994년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취임이나 2009년 민주당의 정권교체 성공처럼 왼쪽으로 움직일 때가 있었지만, 축 자체는 계속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일본인 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리버럴(진보)로 보이는 정치인들도 리버럴이 아니다. 예전에 비해서 상황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나카노 교수는 2차대전 패전 후 일본 보수가 경무장·경제성장 중시 노선을 취한 ‘보수 본류’에서 냉전 후 신자유주의와 복고적 국가주의가 결합한 ‘신우파연합’으로 이행했다고 분석한다. 신우파연합의 신세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 시절 힘을 쌓아 나타난 결과가 아베 신조 정부라고 진단한다. 나카노 교수뿐만 아니라 일본의 진보적 인사들은 일본 우경화의 중요 분기점을 1997년으로 본다. 1997년은 ‘백래시(반발)의 원년’이라고 불린다. 1995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 그리고 이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담은 교과서가 대거 등장하자, 1997년 극우적 역사관으로 무장한 이들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출범시켰다. 아베 정부를 움직이는 단체로 주목받는 극우단체 ‘일본회의’가 결성된 것도 1997년이었다. 야당도 점점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아시아 중심 외교를 주장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1년도 못 채우고 사임했고, 민주당 정부의 마지막 총리는 민주당 내 보수파인 노다 요시히코였다. 2012년 출범한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을 기초로 한 일본의 전후체제까지 허물어가고 있다. 2014년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위헌적 방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각의 결정(한국의 국무회의 의결)했다. 이듬해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 정비인 안보법제 제개정을 강행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자위권 발동 요건을 애매하게 만들어서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아베 정부가 개헌을 할 현실적 필요성 자체는 없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부는 총선 압승 뒤 일단은 몸을 낮추고 있다. 아베 총리 자신뿐만 아니라 각료들은 “겸허”, “노력” 같은 겸손해 보이는 단어를 연발한다. 숨 고르기일 것이다. 아베 정부가 일본 전후 평화주의의 이념적 핵심인 헌법을 개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향우는 계속되고 있다. 총선 전 찾은 도쿄의 메이지신궁에는 ‘교육칙어’를 적은 팸플릿이 비치돼 있었다. 팸플릿에는 “(교육칙어는) 우리 국민의 영원불멸한 도덕교육의 기초라고 이야기된다”고 적혀 있었다. 일왕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교육칙어는 일본 군국주의 교육의 상징이었다. 교육칙어로 교육받은 일본 젊은이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본 정치 우경화를 강 건너 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이유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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