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국 방문을 보면서 3년여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겹쳐 보였다. 두 정상의 방한 일정은 모두 1박2일이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이 중국·일본(2박3일)보다 짧다며 한국 일각에서 우려했듯이, 그때도 시 주석의 일정 때문에 가슴 졸인 이들이 있었다. 당시 시 주석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한 남미 순방을 앞두고 있었다. 혹여 시 주석이 남미 가는 길에 한국을 잠시 들르는 식으로, 한국을 ‘원 오브 뎀’ 곁다리로 만들까 하는 우려였다. 결국 시 주석이 한국만을 방문하는 것으로 정리가 돼 이들을 안심시켰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정 조정이 없었다. 일본 방문 셋째날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은 것이 한국을 배려한 것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우려를 잠재우진 못했다. 국내에는 이같은 각종 의전과 일정을 비교하며 미·중이 한국을 홀대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운 이들이 많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방한 일정에서 더욱 신경이 쓰인 것은 두 사람이 각각 북한과 일본을 다루며 내보인 속내였다. 두 정상은 한국 정상과 함께 있을 때는 하지 않은 이야기를 자신의 연설·강연에선 과감하게 끄집어냈다. 조율된 견해만 공개되는 외교석상에선 정해진 말만 하더라도, 자기만의 무대에선 본연의 모습을 과감하게 내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때부터 줄곧 북한에 대해 모진 말을 아끼지 않았지만, 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군사적 조치 외에 가용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는 등 상당히 자제한 흔적이 역력했다. 미국 언론들도 바뀐 말투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주로 탈북민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처참한 회고담과 다르지 않았다. 자연히 북한은 지옥이고 그 지도자는 폭군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함은 그대로였다. 2014년 7월 시 주석 방한 때는 한-중이 일본에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 무렵 한-중은 밀착해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공동대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미·일과 한국의 보수층에선 한국이 중국에 기운다는 ‘한국경사론’ 우려가 대두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일본’을 언급하지 않았다. 한-중 ‘역사 공조’는 후퇴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시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16세기 임진왜란과 20세기 항일전쟁을 거론하며 ‘간담상조’ 관계인 한-중이 대일본 공동투쟁의 역사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을 일본, 나아가 미국으로부터 중국 쪽으로 끌어오겠다는 시 주석의 입장은 바뀐 게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나 시 주석의 서울대 강연 같은 일은 정상회담을 위해 수많은 사전 협의와 의전 등을 신경썼을 사람들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일이다. 하지만 전략 구도와 핵심 이익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선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외교적 성과를 다양한 재료를 적절히 조리해 만들어낸 하나의 요리에 비유한다면, 각종 재료도 때로는 날것 그대로 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번째 한-중 정상회담이 예고됐다. 문 대통령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의 봉합이라는 근사한 붉은 카펫 위를 걷는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순방을 둘러싼 동북아 전략 구도에선 아직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에 사는 한인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 어깨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oscar@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트럼프의 국회 연설과 시진핑의 서울대 강연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국 방문을 보면서 3년여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겹쳐 보였다. 두 정상의 방한 일정은 모두 1박2일이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이 중국·일본(2박3일)보다 짧다며 한국 일각에서 우려했듯이, 그때도 시 주석의 일정 때문에 가슴 졸인 이들이 있었다. 당시 시 주석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한 남미 순방을 앞두고 있었다. 혹여 시 주석이 남미 가는 길에 한국을 잠시 들르는 식으로, 한국을 ‘원 오브 뎀’ 곁다리로 만들까 하는 우려였다. 결국 시 주석이 한국만을 방문하는 것으로 정리가 돼 이들을 안심시켰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정 조정이 없었다. 일본 방문 셋째날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은 것이 한국을 배려한 것이란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우려를 잠재우진 못했다. 국내에는 이같은 각종 의전과 일정을 비교하며 미·중이 한국을 홀대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운 이들이 많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방한 일정에서 더욱 신경이 쓰인 것은 두 사람이 각각 북한과 일본을 다루며 내보인 속내였다. 두 정상은 한국 정상과 함께 있을 때는 하지 않은 이야기를 자신의 연설·강연에선 과감하게 끄집어냈다. 조율된 견해만 공개되는 외교석상에선 정해진 말만 하더라도, 자기만의 무대에선 본연의 모습을 과감하게 내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때부터 줄곧 북한에 대해 모진 말을 아끼지 않았지만, 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군사적 조치 외에 가용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는 등 상당히 자제한 흔적이 역력했다. 미국 언론들도 바뀐 말투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주로 탈북민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처참한 회고담과 다르지 않았다. 자연히 북한은 지옥이고 그 지도자는 폭군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함은 그대로였다. 2014년 7월 시 주석 방한 때는 한-중이 일본에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 무렵 한-중은 밀착해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공동대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미·일과 한국의 보수층에선 한국이 중국에 기운다는 ‘한국경사론’ 우려가 대두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일본’을 언급하지 않았다. 한-중 ‘역사 공조’는 후퇴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시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16세기 임진왜란과 20세기 항일전쟁을 거론하며 ‘간담상조’ 관계인 한-중이 대일본 공동투쟁의 역사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을 일본, 나아가 미국으로부터 중국 쪽으로 끌어오겠다는 시 주석의 입장은 바뀐 게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나 시 주석의 서울대 강연 같은 일은 정상회담을 위해 수많은 사전 협의와 의전 등을 신경썼을 사람들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일이다. 하지만 전략 구도와 핵심 이익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선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외교적 성과를 다양한 재료를 적절히 조리해 만들어낸 하나의 요리에 비유한다면, 각종 재료도 때로는 날것 그대로 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번째 한-중 정상회담이 예고됐다. 문 대통령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의 봉합이라는 근사한 붉은 카펫 위를 걷는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순방을 둘러싼 동북아 전략 구도에선 아직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에 사는 한인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 어깨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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