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지난 4월 일본에 특파원으로 오고 나서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이 주최하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세미나나 영화 상영회에 참석할 일이 가끔 있었다. 피해자들이 위안소에서 겪은 일을 증언하는 목소리와 모습을 영상 기록을 통해서나마 듣고 볼 때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활자로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참담한 느낌을 받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잔혹해서 어딘가에 활자로 적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재일동포 박수남 감독이 지난가을 도쿄 시부야에서 언론 시사회를 연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을 봤을 때도 그랬다. <침묵>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한-일 간에 본격적으로 현안으로 등장했던 1990년대에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에 건너와서 한 투쟁과 이옥순 할머니의 최근 삶을 다룬 영화였다. 영화에서 할머니들은 1990년대 일본에서 열린 집회에서 “일본군이 유방을 칼로 베었다” 같은 증언을 했는데,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것도 증언 중에서 비교적 수위가 낮은 사례였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지만, 그 이상은 지금도 글로 쓸 수가 없다. 우리 외교부 직속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가 27일 2015년 한-일 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이 아니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내놨다. 일본 정부는 보고서 발표 몇시간 만에 고노 다로 외상 명의의 담화문을 내서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일-한 관계는 관리 불능이 된다”는 수위 높은 경고 발언까지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지난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의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보고서의 결론처럼 2년 전 12·28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인 것이 아니었다는 데 동의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한 합의의 대가는 매우 크게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아직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다거나 재협상하겠다고까지 나서지는 않았지만, 합의는 결정적으로 금이 갔고 파국을 향해 가는 듯 보인다. 태스크포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이미 악화되어 있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는 물론 어렵다.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평창겨울올림픽에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일본은 한국에 점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한-일 간의 협력은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정도에 국한될 수도 있다. 한-일 관계 개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위안부 합의에 손을 대지 않는 게 한국에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한국이 위안부 합의 재협상 방침을 꺼낸다면, 일본은 ‘역사 문제와 한-일 관계를 별도로 접근한다’는 한국 정부의 ‘투트랙’ 입장도 거부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그 일을 대신 해줄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상, 일단은 한국 사회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운동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가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는 한-일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물론 해야 하지만, 관계 악화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아무런 어려움과 고통 없이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위안부 합의’의 향방 / 조기원 |
도쿄 특파원 지난 4월 일본에 특파원으로 오고 나서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이 주최하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세미나나 영화 상영회에 참석할 일이 가끔 있었다. 피해자들이 위안소에서 겪은 일을 증언하는 목소리와 모습을 영상 기록을 통해서나마 듣고 볼 때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활자로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참담한 느낌을 받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잔혹해서 어딘가에 활자로 적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재일동포 박수남 감독이 지난가을 도쿄 시부야에서 언론 시사회를 연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을 봤을 때도 그랬다. <침묵>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한-일 간에 본격적으로 현안으로 등장했던 1990년대에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에 건너와서 한 투쟁과 이옥순 할머니의 최근 삶을 다룬 영화였다. 영화에서 할머니들은 1990년대 일본에서 열린 집회에서 “일본군이 유방을 칼로 베었다” 같은 증언을 했는데,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것도 증언 중에서 비교적 수위가 낮은 사례였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지만, 그 이상은 지금도 글로 쓸 수가 없다. 우리 외교부 직속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가 27일 2015년 한-일 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이 아니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내놨다. 일본 정부는 보고서 발표 몇시간 만에 고노 다로 외상 명의의 담화문을 내서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일-한 관계는 관리 불능이 된다”는 수위 높은 경고 발언까지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지난 합의가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의 공식적 약속이라는 부담에도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보고서의 결론처럼 2년 전 12·28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인 것이 아니었다는 데 동의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한 합의의 대가는 매우 크게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아직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다거나 재협상하겠다고까지 나서지는 않았지만, 합의는 결정적으로 금이 갔고 파국을 향해 가는 듯 보인다. 태스크포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이미 악화되어 있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는 물론 어렵다.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평창겨울올림픽에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일본은 한국에 점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한-일 간의 협력은 북한 핵·미사일 대응 정도에 국한될 수도 있다. 한-일 관계 개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위안부 합의에 손을 대지 않는 게 한국에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한국이 위안부 합의 재협상 방침을 꺼낸다면, 일본은 ‘역사 문제와 한-일 관계를 별도로 접근한다’는 한국 정부의 ‘투트랙’ 입장도 거부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그 일을 대신 해줄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이상, 일단은 한국 사회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운동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가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는 한-일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물론 해야 하지만, 관계 악화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아무런 어려움과 고통 없이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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