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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1 18:12 수정 : 2018.01.11 19:36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며칠 전 중국 포털에서 ‘자광각(慈光?·쯔광거) 폐식용유’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왔다. ‘자광각이 식당인가? 이 집은 큰일났네’ 싶었는데 아니었다. 원래는 궁궐의 일부였고, 지금은 총리가 전용으로 쓰는 접견 장소란다. 그런 고급 시설에서 폐식용유를?

영문을 알 수 없어 좀 더 알아보니 그 자광각이 아니란다. 중국공산당 국가기관공작위원회가 내는 잡지, 곧 관영매체의 이름이다. 미스터리는 한층 깊어진다. 관영매체 <자광각> 잡지가 어쩌다 폐식용유를 썼다고 욕을 먹게 됐을까?

굳이 따지자면 먼저 도발한 것은 <자광각> 쪽이다. 지난 4일 이 매체의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 웨이보 계정은 지난해 ‘랩 오브 차이나’ 우승자로 인기몰이 중인 피지원(PG One)을 상대로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 그의 노래 한 곡이 청소년들의 마약 사용을 부추기고 여성을 비하한다는 지적이 있으니 공인으로서 법을 지키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내용이었다. <자광각>의 뒤를 이어 <신화망>, <중국부녀보>, <법제일보> 등 관영매체들의 웨이보 계정이 비판에 동참했다.

피지원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팬들이 흥분했다. 일부 팬들은 단톡방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자광각? 프랜차이즈 식당 같은데? 우리 고향집 근처에 하나 있었던 것 같아. 아주 유명해.”

“그 말 들으니 저도 본 것 같네요. 이 동네에도 있어요.”

“위생 문제를 고발하지요. 바퀴벌레 몇마리 풀고요.”

“식당 흑역사를 수집해서 각종 게시판에 올리기로 하죠.”

“조금 전 검색어 조작 업체 몇곳에 연락해서 내일 오후 3시쯤에 ‘자광각 폐식용유’ 검색어를 띄우기로 했어요. 여러분도 동참해주세요.”

그리하여 ‘자광각 폐식용유’는 7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게 됐고,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이야기가 한층 더 재미있어진 것은 여기서부터다. 이날 밤 <자광각> 웨이보 계정이 유머와 함께 다시 등장했다.

“자광각 폐식용유가 검색어 상위권에 갔다고요? 이런 부정적 여론엔 어떻게 하죠? 다 지워버릴까요? 비판이 더 매서워지면요? 못 본 척할까요? 그럼 묵인하는 게 되겠죠? 저는 아래층 식당 자광각에 숨어서 바들바들 떨 수밖에요”라며. 그러면서 귀여운 판다가 팔다리를 모으고 앉아 고개를 떨군 사진을 올렸다.

<신화망> 계정이 자신을 ‘신화소여관’이라고 일컬으며 거들고 나섰다. “가슴 아프도다! 백년 점포 자광각이 뜻밖에도 폐식용유를 썼다니! 큰 점포가 사람들을 속이고 법은 안중에도 없는 전형적인 모습이로고!” 급기야 베이징시 공안국의 웨이보 계정인 ‘평안베이징’도 한마디를 보탰다. “베이징시 공안국 환경·식품·약품·여행 안전총대는 식약품과 관련해 법을 어긴 범죄행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뒤 더 이상 이 일이 입에 오르지 않는 걸 보면, 힙합가수의 노래 가사 논란은 익살스럽게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우연히도 실제 이름이 ‘자광각’인 호텔·식당은 좀 억울하게 됐지만 말이다.

눈에 띈 것은 관영매체가 평소답지 않게 보여준 경쾌한 모습이었다. 관영매체들은 “당의 매체는 당의 집체적인 선전자, 선동자, 조직자이다. 당의 노선과 방침과 정책을 정확히 선전해야 한다”는 명제 아래 주로 엄숙하고 무거운 이미지로 각인돼왔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에스엔에스로 뻗어나가며 독자와의 소통에 나서는 모습에서 중국 관영매체의 변화 가능성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태동한 여러 가지 형태가 다양한 목소리로 이어질 수도 있을까? 당국의 언론통제 기술의 발전과 관영매체의 변화는 어느 쪽이 빠를까? 중국 사회 변화를 가늠할 새로운 잣대가 등장하는 풍경이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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