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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1 18:05 수정 : 2018.02.01 19:09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환구시보>라고 자주 외신에 인용되는 중국 신문이 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이나 외국 기자들로부터 이 신문에 대한 성토를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출신국을 막론하고 고개부터 절레절레 젓는다.

그 사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하루 두 편씩 나오는 사설은 거의 유일한 자체 생산 콘텐츠다. 나머지 기사는 대개 외신을 인용한 것들이다. 그런데 표현이 가관이다. 최근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가리켜 중국 내 행정단위 책임자인 ‘성장’(한국의 도지사)이라고 비하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외교가 변덕을 부린다며 ‘소인외교’라고 했다.

한국의 대중국 감정 악화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한국의 사드 지지론자들에게 김치만 먹다가 멍청해졌느냐고 감정적 비판을 쏟아냈다. 서해 조업 중국 어선들에 한국 해경이 실탄 사격을 경고하자 “한국 미쳤냐”고 했다. 매일같이 외국 정부나 정당, 세력을 가리켜 ‘니먼’(당신들)이라 부르는 사설엔, 적어도 우리 기준에선 품위가 없다. 대개는 중국의 손실을 ‘절대악’으로, 중국의 이익을 ‘절대선’으로 규정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 관점이다.

문제는 이 신문을 ‘관영매체’라고 부를 때다.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탓에 일견 타당해 보인다. 국내외 인민일보 기자들이 쓰는 기사가 실리기도 한다. 온라인 ‘환구망’ 부문을 제외하면 환구시보 직원들은 모두 베이징 진타이루에 위치한 ‘인민일보 타운’에서 일한다.

그럼에도 환구시보를 ‘관영매체’라고 선뜻 부르기가 힘들다. 특히 우리말의 ‘관영매체’라는 표현은 당국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인식을 주지만, 중국 관료들은 환구시보가 그런 매체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한 중국 외교관은 “우리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게다가 중국 언론계에서 흔히 말하는 ‘18대 중앙매체’에 이 신문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 자료를 보면, 18대 매체는 장관급(인민일보, 신화사), 차관급(추스, 해방군보, 광명일보, 경제일보, 차이나데일리, 중앙인민라디오, 중앙텔레비전, 국제라디오, 과기일보), 국장급(기검감찰보, 공인일보, 중국청년보, 중국부녀보, 농민일보, 법제일보, 중신사) 등으로 세분돼 있다. 여기 포함되지 않은 환구시보는 관영매체와 상대되는 개념인 ‘시장화 매체’에 들어간다고 스스로도 밝히고 있다.

환구시보는 당국 입장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여론에 바탕을 두고 더 많은 독자가 공감하는 논지를 찾아가려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언론통제사회 중국에선 ‘반정부’, ‘반체제’를 엄격하게 통제할 테니 그 범위는 넓지 않다. 어떤 학자는 “나름대로 보도 가능한 한계선이 어디인지를 찾아보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시도는 환구시보만이 하고 있으니, 그마저도 ‘특별대우’라는 시각도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여러 한국 매체가 환구시보를 자주 인용하면서도 ‘관영매체’로 규정하는 탓에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이 왜곡된다는 점이다. 왜곡은 착각을, 착각은 오류를 불러온다. 이런 상황을 따져봐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국 발표와 항상 동일한 관영매체의 보도 외에 참고할 만한 기사를 내는 중국 매체가 사실상 환구시보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환구시보 중심의 오류’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환구시보 같은 신문이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16개 면 대부분을 ‘한국 대단하다’는 ‘국뽕’스러운 외신기사 번역으로 채우면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덮어놓고 지지하고 홍보하는 식의 신문이 성공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난 그 매체 기자들과 어울리기 힘들었을 것 같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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