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2.22 18:19 수정 : 2018.02.22 19:32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지난 10일 예정됐던 ‘북-미 회동’은 막판에 무산됐다. 갈 길이 멀고, 이제 시작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지난해 상황을 되돌아보면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 같다.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애면글면 애쓴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주변 국가들을 둘러보면 우군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9·19 공동성명’을 전후로 한 2000년대 초·중반에는 6자회담 주최국 위상을 놓지 않으려는 중국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도모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북핵 문제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파상적인 무역공세 앞에서 미-중 관계를 관리하는 것도 벅찬 모양새다.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도 거의 잃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이달 초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북핵 문제는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쳤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도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환영한다는 입장 이외에 뚜렷한 구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쌍중단’(핵·미사일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쌍중단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미국을 설득할 여력도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10년여 전과 비교하면, 중국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것이 오롯이 우리 몫으로 돌아왔다.

일본은 더욱 영향력이 커진 ‘훼방꾼’으로 되돌아왔다. 6자회담에서 별 존재감 없이 납치 피해자 문제에만 집중했던 일본이다. 지금은 조직적으로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며 한국의 영향력 감소에 몰두한다. ‘한국의 중국 경사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불화설’의 진원지를 거슬러올라가면 일본 쪽인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은 북-미 대화에도 계속 부정적인 신호를 발신해왔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단일팀이 입장할 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워싱턴의 진보적인 지식인 사이에서도 뒷말이 나올 정도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방통행이었던 조지 부시 행정부보다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워졌다. 근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비즈니스 거래 방식이 이상하게 접붙여져 있고, 아마추어적 방식에 오만함이 얹혀 있다. 그러다 보니 정책노선 갈등이 수시로 일어나면서 뒤집히기 일쑤고, 세밀한 대북정책 밑그림도 없어 보인다.

이런 구도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고 하루아침에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불가능해 보였던, 의미있는 변화들을 끌어내기 위해 쏟았던 분투에 인색하고 싶지 않다. 펜스 부통령의 거친 방한 행보에 가려졌지만, 북한 대표단의 방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미 대사관의 우리 쪽 외교관들과 미국 쪽 국무부·재무부 실무자들은 숨가쁜 협의를 벌였다. 미국 쪽과 협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 언론에선 ‘미국이 반대한다’는 너무 앞선 보도가 나와 서로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실무자들 사이에선 한-미가 탄탄하게 움직였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보면, 이번엔 무산되긴 했어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의 외교·안보 핵심관계자들이 모여 북한과의 예비대화 필요성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지난해 12월 ‘조건 없는 탐색적 대화’를 꺼냈다가 백악관의 반대에 부딪힌 장면을 떠올리면 트럼프 행정부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2일 남북관계 개선이 이어지는 한 핵·탄도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북-미 양쪽에서 기회의 창이 조금은 열린 것이다.

평창이 끝나도 더 힘든 경기를 펼쳐야 하기에, ‘평창 외교’를 위해 달려온 우리 선수들에게 오늘은 이하이의 노래 ‘한숨’을 들려주고 싶다.

yy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