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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1 17:30 수정 : 2018.03.01 19:00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1972년 중국의 유엔 가입이 확정되고, 저우언라이와 예젠잉 등 수뇌부가 밤 9시가 넘은 시각 호출을 받고 마오쩌둥 관저에 도착했다. 소파에 앉은 마오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바로 대표단을 꾸려서 가시오. 이번 일은 아프리카 흑인 형제들이 우리들을 넣어준 것인데, 가지 않으면 그들과 멀어질 것이오.”

중국-아프리카 우의를 강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얘기지만, 진위 논란이 있다. 당시 함께 불려갔던 슝샹후이는 훗날 마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팩트를 따져봐도 이상한 면이 있다. 당시 아프리카 42개 회원국 가운데 26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북아프리카 6개국을 빼면 ‘흑인 국가’는 20개국이었다. 오히려 영국, 프랑스 등 ‘자본주의 진영’까지 손을 내민 덕에 22개국에 이른 유럽의 도움이 더 컸다. 당시 길항 관계였던 소련이 ‘쿨하게’ 찬성한 덕에 동구권이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흑인 형제들’을 콕 집어낸 이 미담은 꾸준히 미화됐고, 2016년 <중앙텔레비전>(CCTV) 특집 방송에도 등장했다. 이미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중국이 아프리카를 중시한다는 것은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1월초 르완다, 앙골라, 가봉, 상투메 프린시페를 다녀왔다. 중국 외교부장이 연간 첫 해외 순방지로 아프리카에 간 것은 1991년 이래 28년째다. 아프리카 직접투자(FDI) 1위인 중국의 투자 규모는 2~10위를 합친 것보다 많다. 해마다 3월이면 아프리카 기자 수십명이 중국 땅을 밟는다. 중국 초청으로 10개월 동안 연수와 취재를 병행하는 이들이 중국 각지에서 열리는 수많은 국제회의에 모습을 보일 때면 중국이 과시하는 ‘국제성’의 근거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중국에서 <시시티브이>의 지난 춘절(설) 특집 방송의 단막극에 나온 아프리카 묘사가 서구 언론의 뭇매를 맞았을 땐 비판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서 흑인인 척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 단막극엔 아프리카에서 뽑혀 온 수많은 흑인 배우들이 출연했다. 그중엔 각본 작성에 참여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기린을 등장시켜 아프리카를 비하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는 중국이 자랑하는 각종 ‘공유 서비스’에 빗대 “공항에서 공유 기린을 타고 왔어”라는 대사가 나온 장면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아프리카 출신 친구는 아쉬워했다. 분명 단막극을 만든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잘 보이고 싶었을 텐데, 인종 감수성이 부족해서 초래된 “불운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반론, 곧 중국이 서구처럼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고 추악한 노예거래를 일삼은 것도 아닌데 너무한다는 항변에 대해선, 그도 “인간에 대한 지배를 제도화했던 서구의 인종주의와 중국에서 만든 공연 한 토막을 비교할 순 없는 일”이라며 공감했다.

오랜 시간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중국이 인종주의로 비난받는 것은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차별은 어디나 존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경계심은 성장하는 대국이 갖춰야 할 소양이기도 하다. 약점을 보일 때마다 피할 수 없는 화살이 쏟아질 것이다.

다시 마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흑인 형제들이 넣어줬다(擡進去)’는 표현은 가마에 태우듯 높이 들어올려서 넣어주는 동작을 가리킨다. ‘데려오다’, ‘밀어주다’, ‘끌어오다’ 등 단어가 있음에도 형제들이 짊어진 가마에 올라탄 듯 표현한 것은, 애초부터 아프리카를 하대해온 태도가 반영된 거란 지적이 있다. 언젠가 이 단어가 바뀌는 날이 온다면, 중국이 칭찬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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