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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8 18:14 수정 : 2018.03.08 20:32

조기원
도쿄 특파원

지난달 27일 일본 중앙일간지들 사회면 구석에 짧은 기사 한 꼭지가 실렸다. 기사 제목은 ‘조선총련 본부 총격 남성, 북한에 “인내심 바닥”’ 등이었다. 지난달 23일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에 권총을 발사한 사건의 용의자 중 1명인 우익 활동가 가쓰라다 사토시(56)가 경찰에서 범행 이유에 대해서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는 데 대해서 인내심이 바닥이 났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범행 당시 가쓰라다는 차량을 운전했고, 그와 동행한 또다른 야쿠자 출신 용의자가 문에 권총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가쓰라다는 “발포 뒤 차를 몰고 건물에 뛰어들 생각이었다”고도 진술했다. 이들은 총련 건물에 권총 5발을 발사했다.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당시 총련 건물 안에는 당직자들이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쓰라다의 진술은 일본 방향으로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이 싫었기 때문에 북한과 관계가 있는 총련은 총으로 공격해도 괜찮다는 논리로 보인다.

하지만 가쓰라다는 최근의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갑자기 행동에 나선 인물이 아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가쓰라다는 30년 이상 우익으로 활동해온 인물로 2000년대부터 민족차별 단체인 ‘재특회’(재일조선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가 주최한 ‘혐한 시위’에 참가해온 인물이다. 우익들이 인터넷에 올린 선전 동영상에서는 그가 일장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옛 일본군이 착용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그의 자녀 중 한 명은 중학생이던 2013년 재일동포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 쓰루하시에서 “언제까지 우쭐대면 난징대학살이 아니라 쓰루하시대학살을 실행할 것”이라고 외쳐서 일본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위험한 것은 ‘헤이트 스피치’라는 표현과는 달리 실제로는 말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쓰라다의 총련 총격 사건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1923년 일어났던 간토(관동)대지진 때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 같은 헛소문이 퍼진 뒤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다. 군경과 자경단이 조선인 6000명 이상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내각부가 작성한 보고서에도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한 경우가 있다고 적혀 있다. 일본 우익들은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학살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내지 않은 점을 악용해서, 최근에 6000명 학살은 거짓이라며 숫자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지만 학살 자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정도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총련 총격 사건에 대한 일본 사회의 냉담한 반응이다. 총련 총격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기분은 이해한다”같이 두둔하는 듯한 글이 많이 눈에 띄었다. “(총련의) 자작극 아니냐”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아베 신조 정부의 북한 위협 강조 분위기에서 총련은 공격해도 그리 큰 비난을 받지 않는 듯한 공기가 형성되고 있다. 총련 남승우 부의장은 “일본 사회가 총련에 대한 총격을 장려하지는 않지만 용서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라고 분노했다. 총련이 싫다고 해서 총을 쏴서 누군가를 다치게 해도 괜찮을까. 사회면 한구석에 실린 짧은 기사를 보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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