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11일 폐막한 보아오포럼에 가서 관련 기사를 쓰면서, 이 행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여러 차례 했다.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이라고 간결하게 쓰고 싶었지만, 왠지 불충분해 보였다. 같은 고민에서 한국 등 외국 매체뿐 아니라 중국 매체들도 수식어를 붙인다. 하이난에는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이 붙는다. 같은 열대 섬 휴양지다. 보아오포럼에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 또는 ‘중국판 다보스포럼’을 붙인다. 애초부터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을 모델로 삼은 행사다. 두 수식어의 적용은 ‘하이난’과 ‘보아오포럼’을 설명하는 목적에도, 중국인들의 자긍심 제고에도 부합한다. 그래서 다시 써보면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에서 열린 ‘중국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이라는 ‘몹쓸’ 표현이 된다. 맙소사!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웃음과 한숨이 잇따라 터졌다. 사실 중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클리셰다. 작은 배가 다니는 좁은 물길과 다리로 유명한 강남 귀족 문화의 본고장 쑤저우의 기차역에는 한때 ‘동방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크게 붙어 있었다. 푸른 숲 사이로 독일 조차지 시절 지어진 유럽식 붉은 지붕 건물이 보이는 칭다오는 ‘동방 스위스’라는 별칭이 있다. ‘6000년 고도’를 자랑하는 쉬저우는 ‘동방 아테네’라고 한다. 베이징 정보기술(IT) 중심 중관춘은 ‘베이징 실리콘밸리’, 쓰촨성 쓰구냥산은 ‘동방 알프스’라는 별칭이 있다. ‘동방 뉴욕’이라는 아파트나, ‘동방 베를린’이라는 가구 상표는 흔하디흔한 이름들이다. 충분히 국제적 명성을 얻지 못한 명승고적을 홍보하면서 서구의 유명 도시에 빗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효과적인 홍보 방법이다. 다만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발전 경로가 있다”며 세계의 존중을 요구하는 중국이, 인권 문제나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 등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당신이 뭘 아느냐”며 말도 섞지 않으려 하는 중국이, 그런 맥락에서 ‘중국 특색’을 그토록 강조하는 중국이, 이처럼 전국 곳곳에 미국과 유럽이 만개한 지역이란 사실은 흥미롭다. 비단 지역 홍보뿐일까? 2013년 시진핑 지도부 출범 직후,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던 시 주석의 딸과 베이징대 졸업 뒤 미국에 유학 간 리커창 총리의 딸이 학업을 마치지 않은 채 귀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도층 자녀들이 뭇 백성들은 범접하지 못하는 ‘미국 물’을 먹어왔음을 확인하는 뉴스인 동시에, 이때에 이르러 솔선수범으로 ‘귀국 종용’에 나섰다는 소식인 셈이다. 효과는 어땠을까? 회의적 견해가 많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젊고 잘나가는 유학파가 언제나 등장한다. 대개는 미국을 다녀온 것으로 그려진다. 얼마 전에는, 한 중국 외교관이 미국에 부임하게 된 배경이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한 친구는 “여전히 아이들을 저렇게 미국에 보내고 있으니 우리가 말하는 ‘중국몽’은 결국 ‘아메리칸드림’(중국어로 미국몽)인가”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개화기 일본은 전폭적으로 유럽식 제도와 사상을 들여오면서 ‘탈아입구’를 추진했다. 훗날 중국에서는 “우리도 ‘입구’(유럽 진입)를 했다. 다만 다른 쪽 유럽(소련·동구권)이었다”며, 사회주의 체제 수립에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가 있었다. 이는 동시에 ‘자조와 위안’으로 비치기도 했다. 오늘날 서구를 향한 중국 사회의 동경을 보면서 중국의 ‘탈아입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는 한껏 차용하되, 정치제도의 수입은 완강히 거부하는 ‘중국 특색 탈아입구’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oscar@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중국 특색 탈아입구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11일 폐막한 보아오포럼에 가서 관련 기사를 쓰면서, 이 행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여러 차례 했다.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이라고 간결하게 쓰고 싶었지만, 왠지 불충분해 보였다. 같은 고민에서 한국 등 외국 매체뿐 아니라 중국 매체들도 수식어를 붙인다. 하이난에는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이 붙는다. 같은 열대 섬 휴양지다. 보아오포럼에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 또는 ‘중국판 다보스포럼’을 붙인다. 애초부터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을 모델로 삼은 행사다. 두 수식어의 적용은 ‘하이난’과 ‘보아오포럼’을 설명하는 목적에도, 중국인들의 자긍심 제고에도 부합한다. 그래서 다시 써보면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에서 열린 ‘중국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이라는 ‘몹쓸’ 표현이 된다. 맙소사!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웃음과 한숨이 잇따라 터졌다. 사실 중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클리셰다. 작은 배가 다니는 좁은 물길과 다리로 유명한 강남 귀족 문화의 본고장 쑤저우의 기차역에는 한때 ‘동방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크게 붙어 있었다. 푸른 숲 사이로 독일 조차지 시절 지어진 유럽식 붉은 지붕 건물이 보이는 칭다오는 ‘동방 스위스’라는 별칭이 있다. ‘6000년 고도’를 자랑하는 쉬저우는 ‘동방 아테네’라고 한다. 베이징 정보기술(IT) 중심 중관춘은 ‘베이징 실리콘밸리’, 쓰촨성 쓰구냥산은 ‘동방 알프스’라는 별칭이 있다. ‘동방 뉴욕’이라는 아파트나, ‘동방 베를린’이라는 가구 상표는 흔하디흔한 이름들이다. 충분히 국제적 명성을 얻지 못한 명승고적을 홍보하면서 서구의 유명 도시에 빗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효과적인 홍보 방법이다. 다만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발전 경로가 있다”며 세계의 존중을 요구하는 중국이, 인권 문제나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 등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당신이 뭘 아느냐”며 말도 섞지 않으려 하는 중국이, 그런 맥락에서 ‘중국 특색’을 그토록 강조하는 중국이, 이처럼 전국 곳곳에 미국과 유럽이 만개한 지역이란 사실은 흥미롭다. 비단 지역 홍보뿐일까? 2013년 시진핑 지도부 출범 직후,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던 시 주석의 딸과 베이징대 졸업 뒤 미국에 유학 간 리커창 총리의 딸이 학업을 마치지 않은 채 귀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도층 자녀들이 뭇 백성들은 범접하지 못하는 ‘미국 물’을 먹어왔음을 확인하는 뉴스인 동시에, 이때에 이르러 솔선수범으로 ‘귀국 종용’에 나섰다는 소식인 셈이다. 효과는 어땠을까? 회의적 견해가 많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젊고 잘나가는 유학파가 언제나 등장한다. 대개는 미국을 다녀온 것으로 그려진다. 얼마 전에는, 한 중국 외교관이 미국에 부임하게 된 배경이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한 친구는 “여전히 아이들을 저렇게 미국에 보내고 있으니 우리가 말하는 ‘중국몽’은 결국 ‘아메리칸드림’(중국어로 미국몽)인가”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개화기 일본은 전폭적으로 유럽식 제도와 사상을 들여오면서 ‘탈아입구’를 추진했다. 훗날 중국에서는 “우리도 ‘입구’(유럽 진입)를 했다. 다만 다른 쪽 유럽(소련·동구권)이었다”며, 사회주의 체제 수립에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가 있었다. 이는 동시에 ‘자조와 위안’으로 비치기도 했다. 오늘날 서구를 향한 중국 사회의 동경을 보면서 중국의 ‘탈아입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는 한껏 차용하되, 정치제도의 수입은 완강히 거부하는 ‘중국 특색 탈아입구’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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