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파원 “나중에 크면/ 나는 박사가 되고 싶어/ 그리고 도라에몽(1969년부터 연재가 시작된 일본의 어린이 공상과학 만화)에 나올 듯한/ 타임머신을 만들 거야/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빠가 돌아가신/ 그 전날로 갈 거야/ 그래서 “일하러 가면 안 돼”라고/ 말할 거야” 이 시는 일본에서 10여년 전부터 과로로 숨진 이들의 유족들이 자주 낭독해온 시다. 2000년 과로 끝에 자살한 와카야마현 공무원의 아들(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 엄마에게 한 말이 시의 바탕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과로사 유족들이 이 시에 곡을 붙여 시디로 제작했다. 과로사 유족들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과로사 방지와 노동시간 제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일본 정부는 각종 노동 관련 법률 개정안이 담긴 ‘일하는 방식 개혁안’을 국회에서 최종 통과시켰다. 일하는 방식 개혁은 장시간 노동 위주의 현재 근무 방식을 바꿔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이 법안에는 일견 혁명적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잔업 시간을 월 45시간 연 360시간, 특별히 바쁜 시기에도 월 100시간 연 720시간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벌칙을 주기로 했다. 내년부터 대기업에 우선적으로 적용하고 점차 적용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1947년 일본 노동기준법 제정 이후 처음 마련된 처벌규정이 딸린 시간외 노동 제한 규정이다. 71년 만에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잔업 시간을 본격적으로 제한한 이유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2차대전 이후 지속돼온 일본 노동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남성 정규직 사원에게 거의 무제한적으로 일하게 하고, 이런 장시간 노동을 연공서열적 질서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일본 과로사 유족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국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아베 신조 총리와 면담도 요구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는 시간외 노동 제한이라는 대원칙이 들어갔지만, 기업이 이런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도 곳곳에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이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도입이다. 이 제도는 연봉이 높은 전문직 노동자에게는 사용자가 ‘일하는 시간’이 아닌 ‘일의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휴식시간 보장 같은 전제조건이 붙어 있지만, 과로사를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일본 정부는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다양한 근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일하는 방식 개혁이 아니라 ‘일하게 만드는 방식 개혁’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일본 정부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적용 대상을 연 수입 1075만엔 이상의 한정된 직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적용 대상은 법률이 아니라 규칙에 맡겨두고 있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슬금슬금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장시간 노동 규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논의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한국도 7월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다. 장시간 노동 해소 문제는 한국 사회에도 무거운 과제다. 1년여 전 일본에 왔을 때 거리의 간판에 ‘24시간 영업’ ‘연중무휴’라고 적혀 있는 가게가 많은 점이 인상에 남았다. 한국과 닮았으면서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과로사가 없어지는 날 / 조기원 |
도쿄특파원 “나중에 크면/ 나는 박사가 되고 싶어/ 그리고 도라에몽(1969년부터 연재가 시작된 일본의 어린이 공상과학 만화)에 나올 듯한/ 타임머신을 만들 거야/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빠가 돌아가신/ 그 전날로 갈 거야/ 그래서 “일하러 가면 안 돼”라고/ 말할 거야” 이 시는 일본에서 10여년 전부터 과로로 숨진 이들의 유족들이 자주 낭독해온 시다. 2000년 과로 끝에 자살한 와카야마현 공무원의 아들(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 엄마에게 한 말이 시의 바탕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과로사 유족들이 이 시에 곡을 붙여 시디로 제작했다. 과로사 유족들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과로사 방지와 노동시간 제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일본 정부는 각종 노동 관련 법률 개정안이 담긴 ‘일하는 방식 개혁안’을 국회에서 최종 통과시켰다. 일하는 방식 개혁은 장시간 노동 위주의 현재 근무 방식을 바꿔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이 법안에는 일견 혁명적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잔업 시간을 월 45시간 연 360시간, 특별히 바쁜 시기에도 월 100시간 연 720시간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벌칙을 주기로 했다. 내년부터 대기업에 우선적으로 적용하고 점차 적용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1947년 일본 노동기준법 제정 이후 처음 마련된 처벌규정이 딸린 시간외 노동 제한 규정이다. 71년 만에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잔업 시간을 본격적으로 제한한 이유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2차대전 이후 지속돼온 일본 노동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남성 정규직 사원에게 거의 무제한적으로 일하게 하고, 이런 장시간 노동을 연공서열적 질서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일본 과로사 유족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국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아베 신조 총리와 면담도 요구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는 시간외 노동 제한이라는 대원칙이 들어갔지만, 기업이 이런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도 곳곳에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이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도입이다. 이 제도는 연봉이 높은 전문직 노동자에게는 사용자가 ‘일하는 시간’이 아닌 ‘일의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휴식시간 보장 같은 전제조건이 붙어 있지만, 과로사를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일본 정부는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다양한 근로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일하는 방식 개혁이 아니라 ‘일하게 만드는 방식 개혁’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일본 정부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적용 대상을 연 수입 1075만엔 이상의 한정된 직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적용 대상은 법률이 아니라 규칙에 맡겨두고 있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슬금슬금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장시간 노동 규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논의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한국도 7월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다. 장시간 노동 해소 문제는 한국 사회에도 무거운 과제다. 1년여 전 일본에 왔을 때 거리의 간판에 ‘24시간 영업’ ‘연중무휴’라고 적혀 있는 가게가 많은 점이 인상에 남았다. 한국과 닮았으면서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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