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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30 18:04 수정 : 2018.08.31 12:42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트럼프는 트럼프다.”

워싱턴에 오기 전, 서울의 한 미국인 대학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관해 얘기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기성 정치·언론 등 워싱턴 주류의 문법을 깨고 자기 고집과 배짱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킨 그에 대해 대화하다 나온 말이다. 그 표현에는 저돌적이면서도 예측을 불허하는 트럼프 스타일에 대한 냉소 같은 것도 담겼던 듯하다.

정체기에 빠져 있던 북-미 관계에 최근 또다시 시선을 끌어모으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트럼프는 트럼프’라는 말이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을 발표한 뒤 고작 24시간 남짓 만에 트위터로 취소를 발표했다. 나흘 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더는 중단할 계획이 없다”며 훈련 재개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국과 미국의 언론은 ‘북-미 관계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해설을 쏟아냈다. 그런데 또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현시점에서 돈 많이 드는 연합훈련을 할 이유가 없다”고 가볍게 뒤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끌어내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현기증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화염과 분노” 등 전쟁 직전의 언사에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 수용’과 ‘정상회담 취소 발표’를 거쳐 ‘예정대로 진행’까지 갔던 짜릿한 ‘트럼프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우리다. 하지만 한반도와 전세계에 엄청난 파급력이 있는 미국의 외교가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널뛰기 식으로 계속돼도 되는 걸까.

현재 북-미 교착은 완벽한 상호 신뢰를 쌓지 못한 채 각각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처’를 먼저 요구하며 맞서고 있는 것으로, 양쪽 모두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하지만 북-미 교착, 남-북 주춤, 미-중 갈등, 그리고 한-미 균열설이 나오기까지 미국이 되돌아봐야 할 일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전임 대통령들이 수십년간 못한 일을 내가 몇달 만에 해냈다”며 “더 이상 핵 위협은 없다”고 자랑했다. 최근에는 “북한이 비핵화 조처를 취했다고 믿는다”고 말해 북-미 간에 뭔가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렀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과속’을 견제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낙관 기류가 주변국들에 ‘긍정 신호’를 준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에 관한 사안들을 한국과 깊이 공유하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매티스 국방장관이 언급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가능성’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관해 한국 정부는 사전에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 미국은 오히려 남북의 철도사업 공동점검 계획을 불허해 ‘주권 침해’ 논란까지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문제에 미-중 무역전쟁을 끌어다 붙인 것을 두고는 미국 내에서도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해 “카오스(혼돈)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의 큰 밑돌을 놓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만남 자체로 엄청난 성과다. 하지만 그 이행 과정은 구체적인 합의와 실천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 만큼 훨씬 난도가 높다. 그만큼 양쪽을 오가는 물밑협상과 공개적 메시지도 치밀하고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구사하는 널뛰기는 ‘혹시 모를 반전’을 기대하며 협상술로만 봐주기엔 불안하다. 이런 식이라면 북-미가 비핵화와 관계 개선 조처 실행에 착수한다 한들 신뢰를 깨지 않으면서 묵직하게 지속할 수는 있는 걸까.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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