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지난 3주는 한국에는 3차 남북정상회담부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까지,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중대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의 최대 화두는 평양공동선언도, 북-미 대화도 아닌 ‘브렛 캐버노’였다. 상원 인준을 거쳐 지금은 대법관에 취임한 캐버노 지명자의 30여년 전 성폭행 시도 의혹에 불이 붙은 건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발을 디딘 지난달 18일이었다. 이날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교수가 “의회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가 담긴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됐을 때도 미국 방송은 그 흔한 ‘브레이킹 뉴스’조차 물리지 않은 채 온통 캐버노였다. 애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방송 출연이 예약됐던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출연 직전에 ‘캐버노를 다뤄야 한다’며 취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11월6일 중간선거의 핵심 이슈로 옮겨간 캐버노 사태는 여러 측면의 논쟁거리를 제공하며 미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최고 사법기관의 색채에 관한 가치 싸움이 기본 바탕이었지만, 성폭행 의혹과 미투 운동, 특정 사실·주장에 대한 태도, 법관의 성정과 자세, 트럼프 독주와 견제 등 여러 논점을 드러냈다.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트럼프 시대에 극심해진 미국 사회의 분열과 불신이다. 우선 쩍 갈라진 미국 국민을 보여줬다. <시엔엔>(CNN)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캐버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9월6~9일 조사에서 56%였으나 청문회·인준(10월4~7일 조사)을 거치며 86%로 뛰었다. 반면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캐버노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62%에서 80%로 뛰었다. 각자 기존 인식을 강화하며 거리가 더 멀어진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다. 의회에서 전투를 마친 두 당은 이제 똑같이 “우리 지지층의 투표 열기가 높아졌다”고 주장하며 결집에 나섰다. 민주당은 “공화당을 막을 방법은 투표뿐”이라며 여성·젊은층을 공략하고 있고, 공화당은 캐버노 반대자들을 “성난 폭도”로 몰아붙이고 있다. 미디어의 양극화도 심하다. <시엔엔>은 24시간 트럼프 때리기이고, <폭스 뉴스>는 ‘성난 폭도’의 급진성을 부각하느라 열심이다. 한 싱크탱크 인사는 “도대체 어느 채널을 봐야 할지 답답하다”는 기자의 하소연에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비시>(BBC)를 본다”고 했다. 대법원 또한 보수 5, 진보 4의 구도로 기운 것은 물론이고, 신뢰성 위기에 직면했다. 캐버노 대법관의 성폭력 의혹은 반대자들에게는 여전히 ‘사실’로 남았다. 당파성 의심도 키웠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계산되고 조작된 정치적 타격”이라고 반박하고, 임명 뒤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시민사회, 의회, 사법부, 미디어의 분열·불신의 정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그는 캐버노 대법관에 대한 의혹을 처음부터 “조작”으로 규정하고, 반대자들을 “조지 소로스에게 돈 받는 전문적 꾼들”이라고 비난했다. 이제는 “민주당은 너무 급진적이라 그들이 통치하면 베네수엘라처럼 될 것”이라며 ‘색깔론’을 퍼뜨리고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2016년 대선 때 여론조사들이 틀린 걸 본 뒤부터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는 이들을 여럿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진다 한들 주변에서 “트럼프 얼굴 보기도 싫다”는 얘기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jaybee@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캐버노가 보여준 미국 / 황준범 |
워싱턴 특파원 지난 3주는 한국에는 3차 남북정상회담부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까지,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중대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의 최대 화두는 평양공동선언도, 북-미 대화도 아닌 ‘브렛 캐버노’였다. 상원 인준을 거쳐 지금은 대법관에 취임한 캐버노 지명자의 30여년 전 성폭행 시도 의혹에 불이 붙은 건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발을 디딘 지난달 18일이었다. 이날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교수가 “의회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가 담긴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됐을 때도 미국 방송은 그 흔한 ‘브레이킹 뉴스’조차 물리지 않은 채 온통 캐버노였다. 애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방송 출연이 예약됐던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출연 직전에 ‘캐버노를 다뤄야 한다’며 취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11월6일 중간선거의 핵심 이슈로 옮겨간 캐버노 사태는 여러 측면의 논쟁거리를 제공하며 미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최고 사법기관의 색채에 관한 가치 싸움이 기본 바탕이었지만, 성폭행 의혹과 미투 운동, 특정 사실·주장에 대한 태도, 법관의 성정과 자세, 트럼프 독주와 견제 등 여러 논점을 드러냈다.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트럼프 시대에 극심해진 미국 사회의 분열과 불신이다. 우선 쩍 갈라진 미국 국민을 보여줬다. <시엔엔>(CNN)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캐버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9월6~9일 조사에서 56%였으나 청문회·인준(10월4~7일 조사)을 거치며 86%로 뛰었다. 반면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캐버노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62%에서 80%로 뛰었다. 각자 기존 인식을 강화하며 거리가 더 멀어진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다. 의회에서 전투를 마친 두 당은 이제 똑같이 “우리 지지층의 투표 열기가 높아졌다”고 주장하며 결집에 나섰다. 민주당은 “공화당을 막을 방법은 투표뿐”이라며 여성·젊은층을 공략하고 있고, 공화당은 캐버노 반대자들을 “성난 폭도”로 몰아붙이고 있다. 미디어의 양극화도 심하다. <시엔엔>은 24시간 트럼프 때리기이고, <폭스 뉴스>는 ‘성난 폭도’의 급진성을 부각하느라 열심이다. 한 싱크탱크 인사는 “도대체 어느 채널을 봐야 할지 답답하다”는 기자의 하소연에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비시>(BBC)를 본다”고 했다. 대법원 또한 보수 5, 진보 4의 구도로 기운 것은 물론이고, 신뢰성 위기에 직면했다. 캐버노 대법관의 성폭력 의혹은 반대자들에게는 여전히 ‘사실’로 남았다. 당파성 의심도 키웠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계산되고 조작된 정치적 타격”이라고 반박하고, 임명 뒤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시민사회, 의회, 사법부, 미디어의 분열·불신의 정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그는 캐버노 대법관에 대한 의혹을 처음부터 “조작”으로 규정하고, 반대자들을 “조지 소로스에게 돈 받는 전문적 꾼들”이라고 비난했다. 이제는 “민주당은 너무 급진적이라 그들이 통치하면 베네수엘라처럼 될 것”이라며 ‘색깔론’을 퍼뜨리고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2016년 대선 때 여론조사들이 틀린 걸 본 뒤부터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는 이들을 여럿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진다 한들 주변에서 “트럼프 얼굴 보기도 싫다”는 얘기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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