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0.25 18:25 수정 : 2018.10.26 12:37

조기원
도쿄 특파원

“이 책은 이른바 한-일 유착의 시초가 된 ‘한일조약’ 체결을 강행하려는 긴박한 정세 속에서 출판됐고, 나는 그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조선 민족에게나 일본 국민에게나 일제의 조선 지배 정책에 대한 규명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며 그 사상적 근원은 한층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한-일 기본조약을 맺어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작이 일본에서 출판됐다. 재일조선인 사학자 고 박경식씨가 쓴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라는 책이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총련 계열인 도쿄 조선대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파고들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 조사가 별로 없던 시대에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강제연행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보고서를 남겼다. 강제연행은 1939~1945년 노무, 병력, 준병력, 여성 동원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가 1978년 증쇄판 서문에서 부정적 의견을 밝힌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은 “대일 굴욕 외교”라는 비판 속에 체결됐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일 관계의 기초로 자리잡았다. 한국 정부는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협정인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에서 “일본은 한국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제공”하고 “양국은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이후 일본은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개인 청구권도 소멸했다고 주장한다.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으로 경제성장 정책 추진 자금을 마련한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오랫동안 소극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1975~77년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용 사망자 8552명에게 30만원씩 25억6500여만원을 줬다. 이어 2007년 군인·군속 공탁금 10만8900여건(총액 9100만엔), 2010년 노무자 공탁금 6만4200여건(총액 3500만엔)의 명단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아, 한국 정부 재정으로 피해자들에게 1엔당 2000원으로 환산한 위로금 수십만~수백만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일본과 만주 그리고 한반도 내 작업장에 1939년부터 동원된 이들이 최소 3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보상을 받은 이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액수도 적다. 강제동원 진상 조사도 박경식씨 같은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주로 해왔으며, 한국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조사는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뤄졌다.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피해자 4명이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일본 기업이 패소하면 한-일 관계의 기본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일본에서 나온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자면, 한-일 관계가 큰 파열음을 낼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 패소 때는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을 어긴 것으로 보고 한국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제징용자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한 채 만든 한-일 관계의 기초는 크게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국가 간의 관계만을 강조한 관계 자체가 올바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garde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