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일본에 처음 와서 주민등록을 하려고 구청에 갔을 때의 일이다. 구청 직원이 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안내한 책자를 한 권 건넸다. 책자는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버스 노선도와 병원 위치, 의료보험 가입 방법, 각종 사회보험 내용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병원에 갔을 때 아픈 곳을 말할 수 있도록 입, 팔꿈치, 무릎 같은 신체 부위의 일본어 명칭도 적혀 있었다. 도쿄는 여러 민족과 인종이 함께 사는 국제적 도시라는 점을 실감했다. 날씨가 좋은 날 공원에서 인도나 네팔계로 보이는 남성들이 벤치에 함께 앉아 카레 도시락을 먹는 풍경도 자주 본다. 가장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편의점이다. 도쿄 도심에 있는 편의점에서 외국인 종업원을 볼 확률은 절반이 넘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야간에는 일본인 종업원을 오히려 보기 어렵다. 서비스의 질이 외국인이라서 딱히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거의 없다. 일본 편의점 종업원들은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 일본어가 유창해도 이름만 보면 외국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외국인 종업원이 소바를 말고 돈가스를 튀기는 모습이 전혀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가 급증해서, 휴대전화 대리점에 베트남 국기가 붙어 있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베트남 출신 종업원이 베트남어로 응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경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와 비슷한 제도인 기능실습생으로 입국한 사람들, 그리고 유학생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50만명의 외국인이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아베 신조 정부가 보수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안을 최근 밀어붙이고 있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작용한다. 아베 정부는 내년부터 5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최대 35만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를 위해서 입국관리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외국인 ‘단순 노동자’는 받지 않는 정책을 취했다. 1993년 만든 기능실습생 제도의 취지는 개발도상국 노동자가 일본에서 산업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부여하고, 외국인 노동자는 기술 습득 뒤 모국에 돌아가 모국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인 노동자를 인력이 부족한 저임금 업종에 투입하는 기능을 해왔다.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입국관리법 개정안은 기능실습생 제도의 뼈대는 유지하면서 유입 대상 업종을 확대하고, 일본어 능력 등 외국인 노동자가 일본에 입국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은 개정안 내용이 애매모호하고 중요 부분은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졸속이라고 비판한다. 야당은 법무성이 ‘실종’(작업장 이탈)으로 분류한 기능실습생 2870명의 급여 수준을 분석한 결과, 67.6%인 1939명이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 결과도 최근 발표했다. 아베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가 “이민 정책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민은 받고 싶지 않은데 외국인 노동자는 많이 받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최근 일본 언론에서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와 관련해서 한국이 어떤 고민과 과제를 안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자주 싣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는 어느 나라에서나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만을 원하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공통이 아닐까.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이민 없이 외국인 유입 확대될까 / 조기원 |
도쿄 특파원 일본에 처음 와서 주민등록을 하려고 구청에 갔을 때의 일이다. 구청 직원이 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안내한 책자를 한 권 건넸다. 책자는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버스 노선도와 병원 위치, 의료보험 가입 방법, 각종 사회보험 내용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병원에 갔을 때 아픈 곳을 말할 수 있도록 입, 팔꿈치, 무릎 같은 신체 부위의 일본어 명칭도 적혀 있었다. 도쿄는 여러 민족과 인종이 함께 사는 국제적 도시라는 점을 실감했다. 날씨가 좋은 날 공원에서 인도나 네팔계로 보이는 남성들이 벤치에 함께 앉아 카레 도시락을 먹는 풍경도 자주 본다. 가장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편의점이다. 도쿄 도심에 있는 편의점에서 외국인 종업원을 볼 확률은 절반이 넘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야간에는 일본인 종업원을 오히려 보기 어렵다. 서비스의 질이 외국인이라서 딱히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거의 없다. 일본 편의점 종업원들은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 일본어가 유창해도 이름만 보면 외국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외국인 종업원이 소바를 말고 돈가스를 튀기는 모습이 전혀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가 급증해서, 휴대전화 대리점에 베트남 국기가 붙어 있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베트남 출신 종업원이 베트남어로 응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경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와 비슷한 제도인 기능실습생으로 입국한 사람들, 그리고 유학생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50만명의 외국인이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아베 신조 정부가 보수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안을 최근 밀어붙이고 있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작용한다. 아베 정부는 내년부터 5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 최대 35만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를 위해서 입국관리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외국인 ‘단순 노동자’는 받지 않는 정책을 취했다. 1993년 만든 기능실습생 제도의 취지는 개발도상국 노동자가 일본에서 산업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부여하고, 외국인 노동자는 기술 습득 뒤 모국에 돌아가 모국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인 노동자를 인력이 부족한 저임금 업종에 투입하는 기능을 해왔다.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입국관리법 개정안은 기능실습생 제도의 뼈대는 유지하면서 유입 대상 업종을 확대하고, 일본어 능력 등 외국인 노동자가 일본에 입국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은 개정안 내용이 애매모호하고 중요 부분은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졸속이라고 비판한다. 야당은 법무성이 ‘실종’(작업장 이탈)으로 분류한 기능실습생 2870명의 급여 수준을 분석한 결과, 67.6%인 1939명이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 결과도 최근 발표했다. 아베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가 “이민 정책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민은 받고 싶지 않은데 외국인 노동자는 많이 받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최근 일본 언론에서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와 관련해서 한국이 어떤 고민과 과제를 안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자주 싣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는 어느 나라에서나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력만을 원하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공통이 아닐까.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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