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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7 18:07 수정 : 2019.01.18 19:06

조기원
도쿄 특파원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가 최근 일본 기업들이 전후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보상한 사례를 되짚어보는 특집을 실었다. 피해자들을 대리했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세카이>에 기고를 했다. 그는 지난 14일 ‘전후 보상·화해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하기’라는 제목의 도쿄대 세미나에서 강연도 했다.

우치다 변호사는 일본 기업이 보상에 나선 원점으로 ‘하나오카 사건’ 관련 소송을 들었다. 하나오카 사건은 1945년 6월 일본 아키타현 하나오카광산 일대에서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굶주림과 중노동에 항거해 봉기한 사건이다. 일본은 1944년 2차대전이 장기화하자 중국에서도 사람들을 강제연행했다. 가지마구미(현 가지마건설)는 하나오카광산 일대에서 수로 변경 및 댐 건설 공사에 중국인 986명을 동원했다. 헌병과 경찰은 식량창고 문을 열고 저항하던 중국인들을 체포했다. 100여명이 처형당하거나 고문으로 숨졌다. 굶어 죽거나 병들어 숨진 사람까지 합치면 하나오카광산 중국인 노동자의 42%인 420명이 희생됐다.

1995년 중국인 피해자 11명이 가지마건설을 상대로 일본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당시 재판을 담당한 도쿄고등재판소는 가지마건설에 피해자들과 화해하라고 계속 권유했다. 일본 정부는 1972년 중국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했다는 입장이었고, 1심 재판부는 시효를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도쿄고등재판소는 이 사건의 본질이 인권침해라는 점에 주목해서 기업에 화해를 끈질기게 권유했다. 2000년 가지마건설이 중국 홍십자회(적십자)에 5억엔을 신탁금으로 내 희생자 위령비 건립 등에 사용한다는 내용의 화해가 성립했다. 이후 2009년 니시마쓰건설과 2014년 미쓰비시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이 일부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화해를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인 피해자들의 화해 사례를 참고하려는 시도가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모두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은 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우치다 변호사는 “(법적인) 구조로는 한국과 중국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와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는 규모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외무성이 전후에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인 강제연행은 1944년에 시작됐으며 피해 인원은 약 4만명이다. 반면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는 70여만명(동원 지역이 한반도인 경우 제외)으로 추산되며, 피해 기간도 1939년부터 45년까지 장기간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 보상은 가해 일본 기업과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 일본 정부, 한국 정부 4자가 참여한 광범위한 기금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면서 독일이 2000년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을 설립해 강제노역 피해 보상에 나선 사례를 제시한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정부도 피해 회복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을 꾸준히 설득하고, 한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단지 한-일 관계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한동안 방치했던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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