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워싱턴으로 날아오던 17일 낮, 그가 묵을 숙소를 알아내려고 백악관 주변 호텔 6곳을 돌아다녔다. 부끄럽게도, 허탕쳤다. 한국·미국·일본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켰다. 베일에 싸였던 숙소는 김 부위원장의 공항 착륙 시간이 임박해서야 알려졌다. 보안·경호가 특히 심하다고 느낀 건 그의 호텔 출입이다. 김 부위원장은 호텔 뒤쪽 화물용 통로로 드나들었다. 기자들이 “쓰레기통이라도 좀 치워놓지…”라고 탄식한, 옹색한 풍경이다. 지난해 6월 방미 때 취재진에게 보이기도 했던 미소는 전혀 없었다. 그만큼 김 부위원장은 이번에 ‘이벤트’ 성격을 배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신저로서 미국 쪽과 내용 협의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을 봐도, 김 부위원장은 김혁철·박철·김성혜를 대동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매우 진중하게 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셧다운 와중에 드물게 수행한 업무가 북한을 “아주 특별한 위협”으로 적시한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 발표, 그리고 김 부위원장 면담이다. 백악관은 그 직후 트럼프 대통령 취임 2돌 성과 자료에서 대외정책 첫머리에 북-미 정상회담(지난해 6월)을 올렸다. 이 모습들을 보면 몇가지가 뚜렷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평화를 최대 업적으로 남기고자 북한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든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밀고 갈 것이라는 점이다. 또 두 정상 모두 1차 때보다 더 손에 잡히는 합의물을 내놓으려 신경을 쏟는 분위기다. 특히 이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뤘던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를 발표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 핵·미사일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말한 점을 보면, 북-미 논의에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중단이나 폐기가 포함될 가능성이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핵연료, 핵탄두 생산을 중단하는 ‘핵동결’을 시작점 삼아 단계적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 조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충 합의하고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걱정이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처럼, 2017년 11월 이후 1년2개월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없는 “엄청난 진전”을 높게 평가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북한이 핵무기·물질·시설을 한꺼번에 다 공개·폐기하고 미국 또한 즉시 제재를 풀고 국교 수립까지 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공유하되, 실행은 단계적으로, ‘행동 대 행동’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언제 어디로 치달을지 모르는 대치와 긴장을 견뎌내야 한다. 1차 북-미 정상회담 뒤 정체기가 ‘잃어버린 7개월’만은 아닌 것 같다. 회의론 가득한 미국에서도 현실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인 브래드 셔먼 의원(민주당)은 최근 <미국의 소리> 인터뷰에서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며 미사일 기술 동결을 언급했다. 실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이 핵신고서 제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핵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로 양국이 신뢰를 쌓고 다음 단계로 진전시킬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를 ‘스몰 딜’이라고 부르지만, 스몰 딜은 결코 스몰하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처럼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다. jaybee@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북핵 ‘스몰 딜’은 스몰하지 않다 / 황준범 |
워싱턴 특파원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워싱턴으로 날아오던 17일 낮, 그가 묵을 숙소를 알아내려고 백악관 주변 호텔 6곳을 돌아다녔다. 부끄럽게도, 허탕쳤다. 한국·미국·일본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켰다. 베일에 싸였던 숙소는 김 부위원장의 공항 착륙 시간이 임박해서야 알려졌다. 보안·경호가 특히 심하다고 느낀 건 그의 호텔 출입이다. 김 부위원장은 호텔 뒤쪽 화물용 통로로 드나들었다. 기자들이 “쓰레기통이라도 좀 치워놓지…”라고 탄식한, 옹색한 풍경이다. 지난해 6월 방미 때 취재진에게 보이기도 했던 미소는 전혀 없었다. 그만큼 김 부위원장은 이번에 ‘이벤트’ 성격을 배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신저로서 미국 쪽과 내용 협의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을 봐도, 김 부위원장은 김혁철·박철·김성혜를 대동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매우 진중하게 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셧다운 와중에 드물게 수행한 업무가 북한을 “아주 특별한 위협”으로 적시한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 발표, 그리고 김 부위원장 면담이다. 백악관은 그 직후 트럼프 대통령 취임 2돌 성과 자료에서 대외정책 첫머리에 북-미 정상회담(지난해 6월)을 올렸다. 이 모습들을 보면 몇가지가 뚜렷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평화를 최대 업적으로 남기고자 북한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든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밀고 갈 것이라는 점이다. 또 두 정상 모두 1차 때보다 더 손에 잡히는 합의물을 내놓으려 신경을 쏟는 분위기다. 특히 이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뤘던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를 발표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 핵·미사일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말한 점을 보면, 북-미 논의에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중단이나 폐기가 포함될 가능성이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핵연료, 핵탄두 생산을 중단하는 ‘핵동결’을 시작점 삼아 단계적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 조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충 합의하고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는 걱정이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처럼, 2017년 11월 이후 1년2개월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없는 “엄청난 진전”을 높게 평가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북한이 핵무기·물질·시설을 한꺼번에 다 공개·폐기하고 미국 또한 즉시 제재를 풀고 국교 수립까지 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공유하되, 실행은 단계적으로, ‘행동 대 행동’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언제 어디로 치달을지 모르는 대치와 긴장을 견뎌내야 한다. 1차 북-미 정상회담 뒤 정체기가 ‘잃어버린 7개월’만은 아닌 것 같다. 회의론 가득한 미국에서도 현실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인 브래드 셔먼 의원(민주당)은 최근 <미국의 소리> 인터뷰에서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며 미사일 기술 동결을 언급했다. 실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이 핵신고서 제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핵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로 양국이 신뢰를 쌓고 다음 단계로 진전시킬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를 ‘스몰 딜’이라고 부르지만, 스몰 딜은 결코 스몰하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처럼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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