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07 18:47
수정 : 2019.02.08 21:50
조기원
도쿄 특파원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YMCA)에는 ‘2·8독립선언 자료실’이 있다. 1919년 2월8일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은 재일본도쿄조선와이엠시에이(현재의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다. 자료실은 2·8독립선언 대표 11명의 사진과 함께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선언문도 전시하고 있다. 선언문을 다시 읽어보면 ‘동양 평화’라는 말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언문에는 “일본은 조선이 일본과 순치의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앞장서 승인하였다” “마침내 (러일)전쟁이 끝나고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씨의 중재로 러-일 사이에 강화회의가 열리니 일본은 동맹국인 한국의 참가를 불허하고 러-일 두 나라 대표자 사이에 임의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의정하였으며 일본은 우월한 병력을 가지고 한국의 독립을 보전한다는 옛 약속을 어겼다”고 일본의 표리부동한 행동을 꼬집는다. 이어서 “일본에 합병된 한국은 거슬러 동양 평화를 교란할 화근이 될지라. 우리 겨레는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 겨레의 자유를 추구할 것”이라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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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8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2·8 독립선언의 노래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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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립이 동양 평화를 위한 길이라는 인식은 2·8독립선언이 도화선이 되어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에도 드러난다. 3·1독립선언문에는 “병자수호조약(흔히 ‘강화도조약’이라 불리는 조약으로 일본인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불평등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이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호소한다.
3·1운동 100돌을 맞아 일본 지식인들이 6일 도쿄 중의원회관에서 연 ‘2019년 일본 시민·지식인 성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다가와 고(전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재한피폭자문제시민회의 대표는 “3·1독립선언문은 조선 독립이나 (조선 독립을 위한) 일본 설득뿐 아니라 동양 평화, 다시 말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인도적 정신에 근거해 세계 개조를 하자는 매우 중대한 성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00년 전에 이런 성명이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내용이 담겼다. 3·1운동을 일으킨 2·8독립선언문 정신을 다시 배워 일본과 한국이 공유해 평화 연대 선언으로 연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일본인들에게 심심찮게 3·1운동 100돌을 맞아 한국에서 반일 정서와 움직임이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반일’이라는 딱지 붙이기 자체에도 그다지 동의할 수 없거니와 2·8과 3·1 독립선언문 정신 모두에 강조되어 있는 것은 대립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다. 일본 정부도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1995년), 식민 지배는 한국인들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밝힌 ‘간 담화’(2010년)를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평화주의를 진전시켜왔다. 그리고 두 담화는 한-일 관계의 기초였으며, 아베 신조 정부도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못했다. 이는 ‘2019년 일본 시민·지식인 성명’에서도 강조된 내용이다. 2·8독립선언과 3·1운동 100돌을 맞아 양국 관계의 기초가 되는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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