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이 12일 미국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나눈 토론이 매우 뜨거웠던 모양이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의 방북 경험을 들어가며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북한이 ‘고난의 행군’ 때와는 달라졌으니 한번 가보시라”고 하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북핵 해법의 원조는 민주당 정부에서 만들어졌던 ‘페리 프로세스’ 아니냐”는 말까지 꺼냈다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은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방미단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의론이 팽배한 미국에 한국의 입장과 기대를 전하려, 전례 드문 중량급으로 팀을 꾸려 워싱턴을 찾았다. 절절한 마음으로 미국 정치인·전문가들을 만나 설득하고 협력을 구하려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단발성 만남으로 미국 조야의 뿌리 깊은 북한 불신과 반트럼프 정서를 돌려세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 정치권과 주류 언론, 싱크탱크의 지배적 기류를 드러내는 한 사람일 뿐이다. 이들은 북한이 2017년 11월 이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히며 경제 노선에 집중하려는 것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1993년 초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26년 동안 해결 안 된 난제라는 점에 눈길을 주기보다는, 지난해 6월 첫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동안 뭐가 달라졌느냐고 따진다. 전문가들이 “북한은 ‘내가 오늘 은행을 안 턴다면 뭘 줄 거냐’고 묻는 범죄자와 같다”고 태연하게 비난하는 게 워싱턴의 토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에 견줘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훨씬 절박하고, 신중하고, 현실적으로 됐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대화파들 사이에서도 “2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나도 비관론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 정치와 국제적 평가를 민감하게 의식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기류를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정상회담 전 “북한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오크리지로 가져와야 한다”고 떠들며 훼방꾼으로 나섰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최근 뒤로 물러서 있다. ‘첫 만남’의 흥분으로 들떴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기대치를 현실화하고 사전 이해를 구축하는 작업이 병행되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이달 초 방북에 앞서 스탠퍼드대 연설을 통해 북한 체제 보장과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원칙을 천명했다. 전면적 핵 신고를 앞세웠던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고 정책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방북 뒤에는 한국 정치인들을 서울과 워싱턴에서 두 차례 만나 협상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북-미가 주고받을 비핵화-상응조처의 카드들도 웬만큼 나와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다 어떤 ‘+알파’를 얹을지, 미국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해 부분적이나마 제재 완화까지 꺼내들지가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비건 대표를 만난 한 의원은 “20년 이상 씨름해온 문제를 이제 겨우 만나 ‘왓 두 유 원트?’ 했단다.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를 많이 했다가는 실망도 클 것 같다”고 전했다.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트럼프-김정은 두 사람이 좀 더 과감하게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수많은 펠로시들이 “내가 틀렸나” 하게 말이다. jaybee@hani.co.kr
국제일반 |
[특파원 칼럼] 펠로시가 틀리고 두 정상이 맞기를 / 황준범 |
워싱턴 특파원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이 12일 미국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나눈 토론이 매우 뜨거웠던 모양이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의 방북 경험을 들어가며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북한이 ‘고난의 행군’ 때와는 달라졌으니 한번 가보시라”고 하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북핵 해법의 원조는 민주당 정부에서 만들어졌던 ‘페리 프로세스’ 아니냐”는 말까지 꺼냈다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은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방미단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의론이 팽배한 미국에 한국의 입장과 기대를 전하려, 전례 드문 중량급으로 팀을 꾸려 워싱턴을 찾았다. 절절한 마음으로 미국 정치인·전문가들을 만나 설득하고 협력을 구하려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단발성 만남으로 미국 조야의 뿌리 깊은 북한 불신과 반트럼프 정서를 돌려세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 정치권과 주류 언론, 싱크탱크의 지배적 기류를 드러내는 한 사람일 뿐이다. 이들은 북한이 2017년 11월 이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히며 경제 노선에 집중하려는 것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1993년 초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26년 동안 해결 안 된 난제라는 점에 눈길을 주기보다는, 지난해 6월 첫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동안 뭐가 달라졌느냐고 따진다. 전문가들이 “북한은 ‘내가 오늘 은행을 안 턴다면 뭘 줄 거냐’고 묻는 범죄자와 같다”고 태연하게 비난하는 게 워싱턴의 토양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에 견줘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훨씬 절박하고, 신중하고, 현실적으로 됐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대화파들 사이에서도 “2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나도 비관론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 정치와 국제적 평가를 민감하게 의식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기류를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정상회담 전 “북한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오크리지로 가져와야 한다”고 떠들며 훼방꾼으로 나섰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최근 뒤로 물러서 있다. ‘첫 만남’의 흥분으로 들떴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기대치를 현실화하고 사전 이해를 구축하는 작업이 병행되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이달 초 방북에 앞서 스탠퍼드대 연설을 통해 북한 체제 보장과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원칙을 천명했다. 전면적 핵 신고를 앞세웠던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고 정책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방북 뒤에는 한국 정치인들을 서울과 워싱턴에서 두 차례 만나 협상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북-미가 주고받을 비핵화-상응조처의 카드들도 웬만큼 나와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다 어떤 ‘+알파’를 얹을지, 미국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해 부분적이나마 제재 완화까지 꺼내들지가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비건 대표를 만난 한 의원은 “20년 이상 씨름해온 문제를 이제 겨우 만나 ‘왓 두 유 원트?’ 했단다.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를 많이 했다가는 실망도 클 것 같다”고 전했다.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트럼프-김정은 두 사람이 좀 더 과감하게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수많은 펠로시들이 “내가 틀렸나” 하게 말이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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